쉼을 위한 이야기/여행

늦은 도쿄 여행기 #1 : 김포, 하네다 공항편

Kunner 2007. 9. 10. 05:19
Prologue, 2007/08/24 AM 4:00

8월 초, 문득 방학이 가기 전에 반드시 해외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돈은 얼마나 들 것이며 회사는 어찌 해야 하는지.
막상 여행을 가려고 하니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지면 행동을 할 수가 없는 법 - 올초에도 이러다 결국 못 갔지.
이번에도 미루면 또 그렇게 되리라, 덜컥 도쿄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해 버렸다.

막상 항공권을 끊고 나니 걱정이 사그러든다. 까짓거 어떻게든 되겠지.


가혹한 현실은 내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서, 여행정보 하나 알아 볼 틈 없이 몇 주가 지나고..
그 몇주동안 내내 야근, 야근, 야근.
결국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야 야근 러시가 끝이 났다.
그렇게 떠나기 전 날 밤.
새벽 네시까지 인터넷을 두드리며 지하철 노선도며, 관광 지도를 출력하고 숙박업소를 잡았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일본 여행하겠다는 녀석이 출발 바로 전 날에야 숙박 예약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은.
어쨌든 예약은 완료 되었고, 새벽 네시 - 피곤한 눈을 붙인다.


2007/08/24 AM 8:00

세시간쯤 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한다.
국제선을 탈 때는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얘길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부평에서 버스를 타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에 물어 물어 결국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네이트온을 - 그에게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한눈에 봐도 여행자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짐의 크기를 통해 국내인지, 국외인지를 판가름해 볼 수 있었다.
하기사.. 나 같은 나일론 관광객은 짐의 크기는 옆집 놀러 가는 수준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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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여행의 시작



덜컹거리는 버스에 내리니 국제선 공항이다.
인터넷에서 출력한 e-Ticket 을 들고 JAL을 찾아 항공권을 찾았다.
e-ticket을 항공권으로 되찾을 때 좌석을 선택하는 방식이다보니 티켓을 늦게 찾으면 좋은 자리는 이미 모두 뺏긴 후다.
결국 같이 간 형과는 따로 떨어진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창도 통로쪽도 아닌 가운데.
여튼.. 드디어 도쿄행 항공권을 손에 들었다.
여행기 쓰기 좋게 사진이라도 한 장 박아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지만 내 생애 첫 해외 항공권은 기억 속에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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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트래블 메이트 - 현오형


출발하기 전 너무 배가 고파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하나 먹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출발 10분 전. 
아뿔싸, 출국 수속...

햄버거가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대충 입에 쑤셔 넣고는 국제선 탑승구로 달려 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
데오도란트 스프레이가 기내 반입 금지 대상이었던 것이다.
분명 티켓 끊는데서는 비닐 안에만 들어가면 된다 그랬는데, 막상 검색대에서는 그게 아니라네.
100 ml을 넘는게 문제였다.
짐을 따로 부치면 된다기에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JAL의 담당 직원이 오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가는데..
결국 그냥 버리기로 하고 검색대를 지나 출국 수속을 하는데 방송이 울린다.

"오전 11시 50분, JAL 8838편으로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건호 손님과 그 일행분께서는 어서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트렁크를 거의 들다시피 하고 달렸다.
검표하는 아가씨가 차갑게 한마디 한다.
"좀 더 빨리 탑승하셨어야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계를 보니 아직 50분 안 됐는데.. -_-;

비겁한 건너, 아무 말도 못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다.
내 자리를 찾아, 끝으로.. 끝으로.

몹시 친절한 일본 스튜디어스 언니, 하지만 영어는 어쩜 그리 못하시는지..
당신의 발음을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얘기를 해 영어로 된 일본 입국 신고서를 받아들었다.
이런건 비행기 안에서 써둬야 나중에 빨리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길 얼핏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쓰는지도 꼼꼼히 봐뒀는데, 막상 서류를 받고 보니 그냥 간단한 서류였다.
이름과 주소 정도만 적으면 끝인..
기내에 있는 잡지는 모조리 일본어.
일본어는 커녕 히라가나도 읽을 줄 모르는 내겐 그저 그림책 - 재미 있을 리가 없잖아.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사실 좀 억울해, 내 생애 첫 해외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야 하다니..
하지만 할 게 없는 건 할 게 없는거다.
양옆으로 앉은 일본사람들은 내내 열심히 잠만 자고 있는걸!


2007/08/24 PM 2:00

두시간 남짓 날아간 비행기는 어느 새 달라진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구름만 잔뜩 보이던 창밖 풍경에 산이며 건물, 물살을 가르며 흰 띠를 만들고 있는 뱃무리까지.
도쿄 - 하네다다.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입국 수속.
입국 신고서를 쓰고, 세금 관련 서류를 쓰고.. 한참을 기다려 심사대를 통과했다.
큰 유리문을 열고 나가니 드디어 일본이다.

쏼라 쏼라.. 조금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일본어들 투성이, 가 절대 아니다.
사방팔방 한국말만 들린다.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
분명 JAL을 타고 왔는데, JAL 안에는 한국인이 훨씬 많았던 모양이다. 하하.

다들 저마다의 여행에 들떠 있는 표정, 약간은 긴장된 듯한 그들의 표정을 나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가 생겼다.
나이는 나보다 하나 위, NC소프트에서 게임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는데 인상이 참 좋았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서로 갈 방향이 달라 그저 담배 한대 피우고 음료수 하나씩 사 먹고 헤어져야했다.
그나마도 더치페이. 각자 내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까짓 음료수 따위, 몇번이고 사 줄수 있는데.. 앞서 자기들것만 먼저 계산해 버렸단 말이지. ㅋㅋ

여튼.. 그렇게 다시 현오형과 나 둘이 남았다.


먼저 숙소인 미즈에까지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전철표를 끊으려는데..
suica 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쿄 프리패스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겠다.
나중에 남으면 자판기라도 쓰지뭐, 하는 생각으로 suica를 사고 전철 노선도를 들여다 보는데.
공항 안내 도우미 언니가 말을 건다.

쏼라 쏼라.. 아무래도 뭔가 도움이 필요하느냔 일본 말이었겠지.
영어로 해 달라 하니, 나보다 더 어눌한 발음의 영어가 들려온다.
나는 콩글리시, 이 언니는 재패닝글리시(?) ㅋㅋ - 그래도 의사소통은 거의 완벽했다.
둘 다 영어 못 하는 티를 낸거지.

친절한 언니는 도쿄 여행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내 말을 듣고 한글로 된 가이드북을 선물했다.
뭐.. 달라고 하면 다 주는거긴 하지만 그 가이드북을 얻는 장소까지 우리를 안내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친절이 몸에 뱄다고 해야 하나..
걸음 걸음마다 친절함이라는 느낌이 뿜어져 나온다.
저건 훈련의 결과일까, 아니면 천성일까.

당신의 친절함에 감명 받았어요! 하고 말하니 참 좋아하신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결국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녀석인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 고객에게 나는 친절한 사람일까? 전혀 아닐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핫. 반성하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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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란 무엇인가를 화끈하게 보여 주신 바로 그 언니!


2007/08/24 PM 4:00

이 언니 사진 찍어 주고 나서 잠시 벤치에 앉아 노선도를 훑어 보고 전철을 타려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져야했다.
현오형이 프리패스를 사러 간 사이 벤치에 앉아서 노선도를 보던 중, 
프리패스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현오형을 말리러 뛰어 가다가 그만 벤치에 두고 온 카메라의 존재를 잊었던 것이다.

아뿔싸.. 내 카메라도 아니고 회사 카메라..
하나 새로 사다 놓으려면 오십만원은 훌쩍 깨질텐데.. ㅠ.ㅠ
하지만 나란 녀석, 참 포기도 빠르다.
에이 이런 !#$% 하며 그냥 포기하고 전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현오형이 유실물 보관소라도 좀 가 보라 한다.
손바닥 만한 카메라, 누구라도 그냥 확 들고 가지 누가 유실물 센터에 맡기겠나.. 그래도 가 보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갔다.
여기서는 저기에 가 보라 하고, 저기서는 여기에 가 보라 하고..
거의 한 십분여 하네다 제1공항 터미널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결국 마지막, 게이오선 유실물 센터까지 가게 됐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 I"ve lost my digital camera.." 하는데 갑자기 역무원이 환호성을 지른다.
날 거의 껴안을 듯 하며 "SANYO CAMERA, ISN"T IT??"

하핫. 어떤 착한 사람인지.. 카메라를 유실물 센터에 맡기고 간 것이다.
착하다, 일본 녀석들. 섬나라 원숭이 주제에 교육을 잘 받았구나!! 캬캬. -_-;


가슴이 철렁했던 나머지 그 이후로 한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여행 첫날, 첫 여정부터 쉽지 않아.  -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오오에도선을 타기 위해 다이몬 역으로 출발 - 하네다 공항에서의 아찔한 기억을 접고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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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감수 했지..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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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너무 심해 하나 딸캉. 하지만 너무 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