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지리적, 지정학적으로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중국인들에게 황제는 유일한 적법적 정치 권력이었으며, 그 황제 아래 중국인들은 가장 고상한 문명인이었다.
유사 이래, 중국 또는 천하 - 하늘 아래의 모든 것 - 라는 말로 자국을 표현한 그들은, 지금도 스스로 가장 우월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금과 원, 청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도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열등한 문명을 가진 그들을 중국에 동화시켜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는 법을 한족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민족의 위대성이란 터무니없이 자아도취적인 얘기거나, 꽉 막힌 국수주의로 치부될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오랜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패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 중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 가장 강력한 군대와 가장 진보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대항하는 또 다른 절대 권력이 아니라, 내부적 분열 밖에는 없었다.
중국은 사위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오랑캐라 하여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날 중국이 전체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록 서방에서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 이제 백년에 지나지 않지만, 중국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전체주의적 사고에 따라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종속국가들에게 종주국의 역할을 자처하며, 조공과 불평등한 조약을 요구하며 각국의 통치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해왔다.
그런 중국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고, 예를 다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중국의 영향력을 뿌리칠 수 없어서, 스스로 몸을 굽혀 사대주의의 길을 걷곤 했다.
난징조약 이후 백년 동안, 외세에 의한 시련은 중국의 패권 국가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했지만 그 상처는 오히려 자국 중심 주의에 더 큰 불을 지피게 했다.
오늘날에도 중국은 오직 패자가 되기만을 원하는 것 같으며, 주위의 국가들을 오직 지리적 인접국의 의미로서만 간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수천년 전부터 쭉 이어져 오던 자국의 패권을 또 다시 일으켜, 인접국들을 조공국가와 적국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고, 지리적인 문제의 영토 분쟁도 아니다.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소련과의 분쟁이나,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닌 인도와의 영토 분쟁은 패자가 되기 위한 행동일 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쩌둥이 세운 또 다른 형태의 제국이다.
이 제국은 유사 이래 등장한 많은 제국들과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 패권을 지향한다는 데 있어서는 기존 제국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은 곧, 중국의 주변국들에게 자신들의 패권을 인정하게끔 만들고야 말 것이라는 말과 같다.
중국은 지난 수십년 간, 시장 개방과 같은 반사회주의적 행보로 세계를 미소짓게 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앞세운 시장 경제의 침투와 천안문 사태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의 침투가 중국을 스스로 깨어나게끔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낙관론자들은 이제 곧 중국이 서구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또 동북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속의 일원으로 성숙한 자세를 보여 주리라 예상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곧 중국에 이제껏 다시 볼 수 없던 변혁의 바람이 불고, 지구 상 마지막 남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날은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서구의 발전 모델을 보면, 시장 경제로 인한 부의 획득이 중산층 계급의 확대를 가져오고, 중산층 들이 기존의 계급과 낡은 관념을 타파하며 사회 개혁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시장이 개방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매년 2자리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싹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서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사그러든 것처럼 보이며 그때 시위를 주도했던 세대들은 현재 중국의 패권에 충실히 동참하는 세력이 되었다.
시장 경제는 중국에게 자국의 낙후된 기술을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의 주요 기술로 교체하는 방식 중 하나로 전락했으며 굶주린 인민의 배를 채우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우리는 중국의 시장 개방을 문명의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의 순리라고 믿지만, 진짜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3세계의 충실한 일원이라 말하는 중국이 인도를 침략하고, 동남아시아 정세에 깊이 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구나 매년 두 자리 수로 군비를 확장해 나가는 중국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서방에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고 이란과 핵을 거래하는 중국.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을 비난하면서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돕고 북한에 탄도 미사일 기술을 제공하는 중국.
시장 경제를 통해 서방 기술을 축적하고, 그 부를 외부로 환원하지 않은채 매년 천문학적인 군비 확충과 해안선의 요새화를 진행하고 있는 중국.
이런 중국의 이중적인 모습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또 다시 지난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 온 중국의, 중국을 위한, 중국에 의한 패권에 휘말려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가 지금도 다른 나라의 패권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패자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은, 그 패자가 누구건간에 딱히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패권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적어도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아는 체제에 속한 패자가 그렇지 않은 패자보다 나을 거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의 동향을 예의주시 해야 한다.
북한의 정세 변화에 따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지도 모르는 것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일 것이다.
또한,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간의 균형 관계가 깨지게 될 때, 그 영향력이 가장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이는 나라도 역시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더 이상 유화적인 제스쳐를 보내지 않아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을 때, 그때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던 "만만디" 한 중국이 아닐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