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시사人Kunner
내일은 대선이 있는 날...
Kunner
2002. 12. 19. 08:55
내일은 12월 19일.. 바야흐로, 21세기 첫 대선이 있는 날이다.
나에게는 첫번째 대선이며, 확실히 지지할 수 있는 후보가 나왔다는데 있어 아주 의미 있는 대선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근대, 현대사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다.
구한말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 반세기..
그간 우리의 역사는 긴 시련,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은 차치하고라도..
무능의 극치를 보여 준 구한말의 관료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윤보선,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어둡고 긴 공백기였다.
그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국민의 깨어있는 정치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새삼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젊은 층의 정치참여가 현저하게 줄어 들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풍조는 가히 우려할 만 하다.
왜 예전에 중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더니, 90%이상이 우리나라가 부패공화국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하는 기사를 우리는 읽어 본 적이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또 통감하는 일이다.
하지만, 썩은 정치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의 정치의식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치의식이 낙후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라는 걸 겪어 본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을 표방하고 건국한 이래, 반세기가 지났을 뿐이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반세기 동안 진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던 시간은 노태우 시절 이후라고 봐야 한다.
물론, 노태우 이후의 우리 정치의 모습이 민주공화정에 입각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지난 정권들을 볼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흑색선전과 편파언론등에 가려 대다수의 국민은 제대로 정보를 얻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노태우 이전 시절에 민주공화정의 모습을 찾지 못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되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양반 - 중인 - 상민 - 천민으로 이어지는 세습 신분제를 통해 철저히 단절된 사회였다.
이 중 양반은 사회의 모든 특권과 교육, 의료, 복지등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었고, 그 아래 계층은 대부분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양반은 비난의 대상이면서 또 당대의 지식인으로써,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비난의 대상과 존경의 대상이 같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에서 상위계급에 대한 동경과 질시는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관계를 애증이라 부른다.
아무튼.. 이런 애증의 관계 속에서 대다수의 국민(백성)의 입장에서 일부 지식인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어떤 사물과 사건의 판단기준에서 그들의 선동은 항상 옳은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못 배웠기 때문에 더 배운 사람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도 할 것이나 어찌 보면 한민족의 소박함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나는 동의한다.
민족사의 시련 앞에서 대중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선택권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배운 사람들에게 있었고, 대중에게는 이리되도 한 세상, 저리 되도 한 세상의 보릿고개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천민의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상민에게는 일부러 생활고를 가중시켜 교육기회를 간접적으로 박탈한 것은 다름 아닌 배운 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간악한 술수였다.
그래서 늘 못 배운 사람들은 배운 사람을 동경하게 되고, 그 결과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된 이래로 우리의 향학열은 가히 세계최고의 수준이 된 것 쯤은 여담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대중은 기득권 층에 그런 애증을 갖고 있었고, 그 애증의 관계 속에서 기득권 층이 해 나가는 대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네 역사에서 대중은 결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어서, 일제강점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의병전쟁을 한 사람들은 잘 배우고 잘 먹고 살던 양반 계층보다 상민, 천민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특히 의병장의 수를 따져 보면 전체 의병장의 90% 이상이 상민, 천민인 것을 볼 때, 우리 역사 속의 대중을 무지한 계층으로 인식하는 식민사관은 절대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우리 소박한 민족성은 기득권 세력에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일제 청산 작업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이, 그런 지배계층, 그런 기득권층은 일제시대에 이어 또 다시 대다수의 국민(백성)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정치를 하며 국가와 민족의 안녕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스스럼 없이 매국, 반민족행위, 반민주행위를 자행했다.
기득권의 비양심, 그것은 비단 구한말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제 이후 이승만 같은 기회주의자가 12년동안 국가의 번영과 미국식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며 정권을 농단했고, 4-19로 정권을 잡은 윤보선은 무능력으로 국민의 성원을 무시했다.
그리고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철저한 선동정치와 매수, 공작, 그리고 탄압으로 강산이 무려 두 번이나 변할 동안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일체의 대화와 타협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군/경을 통한 강력한 탄압정책, 그리고 울던 아이도 그친다는 중정의 위세를 바탕으로 국민위에 군림했던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에도 불구, 이 땅에 민주주의의 이념을 퇴보시켰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 후의 전두환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철저한 공작(3당통합)과 언론매수를 통해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 가며 승리한 노태우야 더 말 할 것도 없다.
70년대,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부르짖으며 김대중과 함께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워 보겠다던 김영삼은, 노태우의 3당통합 - 차기 대권 이라는 당근 앞에 역사적 사명과 정치가의 양심, 그리고 국민에 대한 의무감등을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런 후에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이젠 그 김대중 정권도 막바지에 다다라 기대로 시작됐던 정권의 끝이 어이없게 끝나는 것을 보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길고 긴 반세기의 암울한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은, 이제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전환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치달으면서 눈살 찌뿌리게 하는 일도 많이 있긴 하지만,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볼 수 없는, 참신한 후보들의 모습이 반갑다.
물론, 권영길의 경우 초선이 아니기 때문에 참신하다고 볼 수 없으나, 그 전까지의 경우 그의 영향력이란 극히 미미했기에 최근 3 안에 드는 그의 지지율을 생각해 볼 때, 이제서야 비로소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에 적합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에서 민주노동당의 위세는 미미할 수 밖에 없으나, 철저한 반공으로 무장되어 당연한 주장도 적색으로 분류되어 탄압받던 이 땅에서 진보 - 좌익 성향을 띄는 정당이 3번째 당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반갑고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말 눈물 겹도록 반가운 것은, 우리나라가 반세기를 기다려 드디어 제대로 된 자기 색깔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선가능성을 볼 때 한번에 둘이나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의 경우 당선가능성이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두자리 수의 가능성을 가진 후보임에는 틀림 없는 일이다.
설마 그 외의 3명의 군소후보에 비할까보냐..(국적 장세동이 사퇴했으므로 현재는 3명이다)
나는 지난 2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근 3번의 TV 합동 토론, 그리고 무수한 대통령 후보 연설, 그리고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대선기사를 접하면서 여러번 생각의 방향을 다듬어 왔다.
애초에 나의 선택은 이인제였다.
97년의 그의 선택은 용단이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신뢰와 지지를 단번에 실망과 분노로 바꾸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며, 진정 그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의 판단이 97년 대선때 잠깐 스친 이인제의 박정희 신드롬의 영향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수도 없었겠지만 만약 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대통령이 되었다면...아찔하다.
그 후 줄곧 노무현의 입장에 서 왔다.
하지만 선거 막판.. 나는 권영길로 급선회 했다.
그의 파격적인 정책들과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그의 정치관에 푹 빠져 버렸다.
특히 그의 투쟁의 삶은 나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제 선거 하루 전날.. 나는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다.
노무현, 권영길...
이 두 후보는 어렸을 때 부터 역사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 무척이나 반갑고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각 후보의 정견과 당의 입장을 볼 때, 나의 선택은 권영길이다.
하지만, 진보 - 보수의 대결 구도로 볼 때, 둘 다 진보쪽에 속한 입장이고, 그 반대에는 이회창이 있다고 계산해 보면..
정말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 중 어느 하나로 표가 몰리지 않는 한 내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이회창의 당선 가능성만 올려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지금.. 신나게 글을 써 내려 가는 판에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뉴스기사가 나온다...
정몽준이 노무현의 지지를 철회한다는 기사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다.
당장 내일이 선거일인데.. 이게 뭐하자는 것인가.
대체 이토록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노무현의 대북, 대미관이 정몽준 측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진짜 이유는 차차기 대통령 후보의 얘기에 대해 노무현이 유보적인 입장으로 나서자 심기가 상했다고 하는데..
진짜 이유야 확실한 것이 아니니 넘어 가기로 하고.. 대북,대미관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단일화 협의 하면서 양당이 정책 공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그때의 정책 공조는 대체 뭐하는 것인가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래도 내일 선거 구도에 엄청난 파장이 생길 것 같아.. 내심 불안하다.
이런 기분 갖고는.. 더 이상 글이 써내려 가 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나라 정치는 누가 대통령을 해도 결국 그 나물의 그 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이건 지극히 패배주의 적이고 지극히 무책임한 말임을 왜 모르는가?
대선이라는 것, 국민투표라는 것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힘을 보여줘야 하고 올바로 검증되지 못한 정치가는 표로 응징해야 하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쿠데타라도 한번 더 일어나서 계엄을 선포하고 싹 잡아 들이고 그래야 개혁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정치란 민생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IMF 만 하더라도, 문란한 국정과 방만한 재벌경영만 아니었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대다수의 국민은 위의 말을 꺼내며 방관자적 태도를 유지했다.
또 이런 실수를 할 것인가?
우리는 4-19 혁명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이 들어선 이래로 국민의 힘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 준 것은 4-19였다.
하지만 4-19의 단 하나의 실수는 차기 정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또 다시 유혈시위가 벌어진다는 것은 민족사의 비극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은 스스로의 통치자를 제대로 뽑아야 하고,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뽑는데 노력해야 하고, 행정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각급 행정 관료를 뽑는데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며, 후손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 주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점을 꼭 깨달아야 한다.
혹시 여기 게시판에 오는 사람 중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면, 올바른 정치의식으로 주권을 행사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신민족주의의 물결에서 반만년 역사를 가진 자랑스런 한민족의 위상을 찾는데, 아니 그런 민족적, 대외적 개념은 차치하고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나라가 이른바 소수의 엘리트들이 좌지우지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평소에는 자기네 집 애완견보다 존중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에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 입에 붙는 이 나라 썩은 정치인들에게 철퇴를 가하도록 하자.
p.s 노무현과 정몽준의 공조가 시작 될 때 부터 나는 그건 실수라는 생각을 해 왔다.
아마 노무현의 짧지 않은 정치경력 중 가장 큰 실수가 아닌가 한다.
기본적인 입장과 노선이 다른 정몽준과의 연합은 표심을 모으기 위함, 다름 아니었다.
그런 공조는 DJP 연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결과 또한 그러리라고 보는게 나의 시각이었다.
물론, 노무현 - 정몽준의 공조가 깨진 탓에 선거의 판도가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그렇게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결국 DJP 연합의 행보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애초에 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었나..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나는 또 갈등에 빠져야 할 것 같다.
노무현의 가능성이냐, 권영길에게의 의미있는 한 표냐..
이미 정몽준의 거품이 빠진 노무현에게 당선가능성이라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는 것 같고..
정견의 관점에서 보면 권영길이 다소 우위에 있고, 개인적인 선호는 노무현에 우위가 있고..
아마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그들의 선택, 나의 선택은 어떨 것인가...
내일 아침... 기호 2번과 4번, 그 둘 중 하나를 찍으며 나는 선거장을 벗어 날 것이다.
아직은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겠다.
나에게는 첫번째 대선이며, 확실히 지지할 수 있는 후보가 나왔다는데 있어 아주 의미 있는 대선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근대, 현대사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다.
구한말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 반세기..
그간 우리의 역사는 긴 시련,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은 차치하고라도..
무능의 극치를 보여 준 구한말의 관료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윤보선,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어둡고 긴 공백기였다.
그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국민의 깨어있는 정치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새삼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젊은 층의 정치참여가 현저하게 줄어 들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풍조는 가히 우려할 만 하다.
왜 예전에 중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더니, 90%이상이 우리나라가 부패공화국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하는 기사를 우리는 읽어 본 적이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또 통감하는 일이다.
하지만, 썩은 정치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의 정치의식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치의식이 낙후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라는 걸 겪어 본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을 표방하고 건국한 이래, 반세기가 지났을 뿐이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반세기 동안 진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던 시간은 노태우 시절 이후라고 봐야 한다.
물론, 노태우 이후의 우리 정치의 모습이 민주공화정에 입각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지난 정권들을 볼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흑색선전과 편파언론등에 가려 대다수의 국민은 제대로 정보를 얻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노태우 이전 시절에 민주공화정의 모습을 찾지 못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되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양반 - 중인 - 상민 - 천민으로 이어지는 세습 신분제를 통해 철저히 단절된 사회였다.
이 중 양반은 사회의 모든 특권과 교육, 의료, 복지등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었고, 그 아래 계층은 대부분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양반은 비난의 대상이면서 또 당대의 지식인으로써,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비난의 대상과 존경의 대상이 같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에서 상위계급에 대한 동경과 질시는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관계를 애증이라 부른다.
아무튼.. 이런 애증의 관계 속에서 대다수의 국민(백성)의 입장에서 일부 지식인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어떤 사물과 사건의 판단기준에서 그들의 선동은 항상 옳은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못 배웠기 때문에 더 배운 사람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도 할 것이나 어찌 보면 한민족의 소박함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나는 동의한다.
민족사의 시련 앞에서 대중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선택권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배운 사람들에게 있었고, 대중에게는 이리되도 한 세상, 저리 되도 한 세상의 보릿고개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천민의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상민에게는 일부러 생활고를 가중시켜 교육기회를 간접적으로 박탈한 것은 다름 아닌 배운 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간악한 술수였다.
그래서 늘 못 배운 사람들은 배운 사람을 동경하게 되고, 그 결과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된 이래로 우리의 향학열은 가히 세계최고의 수준이 된 것 쯤은 여담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대중은 기득권 층에 그런 애증을 갖고 있었고, 그 애증의 관계 속에서 기득권 층이 해 나가는 대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네 역사에서 대중은 결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어서, 일제강점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의병전쟁을 한 사람들은 잘 배우고 잘 먹고 살던 양반 계층보다 상민, 천민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특히 의병장의 수를 따져 보면 전체 의병장의 90% 이상이 상민, 천민인 것을 볼 때, 우리 역사 속의 대중을 무지한 계층으로 인식하는 식민사관은 절대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우리 소박한 민족성은 기득권 세력에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일제 청산 작업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이, 그런 지배계층, 그런 기득권층은 일제시대에 이어 또 다시 대다수의 국민(백성)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정치를 하며 국가와 민족의 안녕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스스럼 없이 매국, 반민족행위, 반민주행위를 자행했다.
기득권의 비양심, 그것은 비단 구한말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제 이후 이승만 같은 기회주의자가 12년동안 국가의 번영과 미국식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며 정권을 농단했고, 4-19로 정권을 잡은 윤보선은 무능력으로 국민의 성원을 무시했다.
그리고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철저한 선동정치와 매수, 공작, 그리고 탄압으로 강산이 무려 두 번이나 변할 동안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일체의 대화와 타협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군/경을 통한 강력한 탄압정책, 그리고 울던 아이도 그친다는 중정의 위세를 바탕으로 국민위에 군림했던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에도 불구, 이 땅에 민주주의의 이념을 퇴보시켰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 후의 전두환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철저한 공작(3당통합)과 언론매수를 통해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 가며 승리한 노태우야 더 말 할 것도 없다.
70년대,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부르짖으며 김대중과 함께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워 보겠다던 김영삼은, 노태우의 3당통합 - 차기 대권 이라는 당근 앞에 역사적 사명과 정치가의 양심, 그리고 국민에 대한 의무감등을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런 후에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이젠 그 김대중 정권도 막바지에 다다라 기대로 시작됐던 정권의 끝이 어이없게 끝나는 것을 보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길고 긴 반세기의 암울한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은, 이제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전환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치달으면서 눈살 찌뿌리게 하는 일도 많이 있긴 하지만,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볼 수 없는, 참신한 후보들의 모습이 반갑다.
물론, 권영길의 경우 초선이 아니기 때문에 참신하다고 볼 수 없으나, 그 전까지의 경우 그의 영향력이란 극히 미미했기에 최근 3 안에 드는 그의 지지율을 생각해 볼 때, 이제서야 비로소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에 적합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에서 민주노동당의 위세는 미미할 수 밖에 없으나, 철저한 반공으로 무장되어 당연한 주장도 적색으로 분류되어 탄압받던 이 땅에서 진보 - 좌익 성향을 띄는 정당이 3번째 당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반갑고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말 눈물 겹도록 반가운 것은, 우리나라가 반세기를 기다려 드디어 제대로 된 자기 색깔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선가능성을 볼 때 한번에 둘이나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의 경우 당선가능성이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두자리 수의 가능성을 가진 후보임에는 틀림 없는 일이다.
설마 그 외의 3명의 군소후보에 비할까보냐..(국적 장세동이 사퇴했으므로 현재는 3명이다)
나는 지난 2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근 3번의 TV 합동 토론, 그리고 무수한 대통령 후보 연설, 그리고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대선기사를 접하면서 여러번 생각의 방향을 다듬어 왔다.
애초에 나의 선택은 이인제였다.
97년의 그의 선택은 용단이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신뢰와 지지를 단번에 실망과 분노로 바꾸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며, 진정 그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의 판단이 97년 대선때 잠깐 스친 이인제의 박정희 신드롬의 영향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수도 없었겠지만 만약 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대통령이 되었다면...아찔하다.
그 후 줄곧 노무현의 입장에 서 왔다.
하지만 선거 막판.. 나는 권영길로 급선회 했다.
그의 파격적인 정책들과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그의 정치관에 푹 빠져 버렸다.
특히 그의 투쟁의 삶은 나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제 선거 하루 전날.. 나는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다.
노무현, 권영길...
이 두 후보는 어렸을 때 부터 역사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 무척이나 반갑고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각 후보의 정견과 당의 입장을 볼 때, 나의 선택은 권영길이다.
하지만, 진보 - 보수의 대결 구도로 볼 때, 둘 다 진보쪽에 속한 입장이고, 그 반대에는 이회창이 있다고 계산해 보면..
정말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 중 어느 하나로 표가 몰리지 않는 한 내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이회창의 당선 가능성만 올려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지금.. 신나게 글을 써 내려 가는 판에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뉴스기사가 나온다...
정몽준이 노무현의 지지를 철회한다는 기사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다.
당장 내일이 선거일인데.. 이게 뭐하자는 것인가.
대체 이토록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노무현의 대북, 대미관이 정몽준 측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진짜 이유는 차차기 대통령 후보의 얘기에 대해 노무현이 유보적인 입장으로 나서자 심기가 상했다고 하는데..
진짜 이유야 확실한 것이 아니니 넘어 가기로 하고.. 대북,대미관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단일화 협의 하면서 양당이 정책 공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그때의 정책 공조는 대체 뭐하는 것인가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래도 내일 선거 구도에 엄청난 파장이 생길 것 같아.. 내심 불안하다.
이런 기분 갖고는.. 더 이상 글이 써내려 가 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나라 정치는 누가 대통령을 해도 결국 그 나물의 그 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이건 지극히 패배주의 적이고 지극히 무책임한 말임을 왜 모르는가?
대선이라는 것, 국민투표라는 것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힘을 보여줘야 하고 올바로 검증되지 못한 정치가는 표로 응징해야 하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쿠데타라도 한번 더 일어나서 계엄을 선포하고 싹 잡아 들이고 그래야 개혁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정치란 민생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IMF 만 하더라도, 문란한 국정과 방만한 재벌경영만 아니었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대다수의 국민은 위의 말을 꺼내며 방관자적 태도를 유지했다.
또 이런 실수를 할 것인가?
우리는 4-19 혁명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이 들어선 이래로 국민의 힘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 준 것은 4-19였다.
하지만 4-19의 단 하나의 실수는 차기 정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또 다시 유혈시위가 벌어진다는 것은 민족사의 비극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은 스스로의 통치자를 제대로 뽑아야 하고,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뽑는데 노력해야 하고, 행정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각급 행정 관료를 뽑는데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며, 후손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 주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점을 꼭 깨달아야 한다.
혹시 여기 게시판에 오는 사람 중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면, 올바른 정치의식으로 주권을 행사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신민족주의의 물결에서 반만년 역사를 가진 자랑스런 한민족의 위상을 찾는데, 아니 그런 민족적, 대외적 개념은 차치하고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나라가 이른바 소수의 엘리트들이 좌지우지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평소에는 자기네 집 애완견보다 존중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에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 입에 붙는 이 나라 썩은 정치인들에게 철퇴를 가하도록 하자.
p.s 노무현과 정몽준의 공조가 시작 될 때 부터 나는 그건 실수라는 생각을 해 왔다.
아마 노무현의 짧지 않은 정치경력 중 가장 큰 실수가 아닌가 한다.
기본적인 입장과 노선이 다른 정몽준과의 연합은 표심을 모으기 위함, 다름 아니었다.
그런 공조는 DJP 연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결과 또한 그러리라고 보는게 나의 시각이었다.
물론, 노무현 - 정몽준의 공조가 깨진 탓에 선거의 판도가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그렇게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결국 DJP 연합의 행보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애초에 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었나..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나는 또 갈등에 빠져야 할 것 같다.
노무현의 가능성이냐, 권영길에게의 의미있는 한 표냐..
이미 정몽준의 거품이 빠진 노무현에게 당선가능성이라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는 것 같고..
정견의 관점에서 보면 권영길이 다소 우위에 있고, 개인적인 선호는 노무현에 우위가 있고..
아마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그들의 선택, 나의 선택은 어떨 것인가...
내일 아침... 기호 2번과 4번, 그 둘 중 하나를 찍으며 나는 선거장을 벗어 날 것이다.
아직은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