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위한 이야기/여행

지난 8월의 늦은 여행기.

Kunner 2005. 9. 27. 22:21
-
시간도 많이 지난데다, 여행치고는 딱히 대단한 기억도 없는터라.
길게 쓸 무언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쓰고 나니 뭐 할 말이 그리 많은지. ㅋㅋ
나는, 천성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2박 3일 동안 찍은 사진은 스무남짓에 불과.
그나마도 내 사진은 한장도 없네. 하하..

그럼, 사진과 함께 짤막한 술회를..


*

 /><br /><img src=출발!

내려가는 길, 주말이 광복절 휴일과 맞물린 탓에 정말 엄청 막혔는데..
운전이 싫어 친구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갔다. ㅋㅋ
고속도로를 포기, 국도로 충주까지 내려갔다.
고속도로의 늘어진 정체행렬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

하지만 출발 하기 전, 워낙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아침에 당도했어야 할 충주는 저녁 무렵에나 닿게 됐다.
어쩌면 여행기보다 훨씬 더 길 법한 그 우여곡절들.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전날, 내 차가 사고가 나서 차 앞 부분이 완전히 함몰해 버렸었지.
사고 당시 운전했던 친구는 엄청 미안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임시넘버 달려 있는 중형차 렌트 받아서 편하게 타고 갔다 왔고..
나 역시 차를 새로 살 생각이었으니.. 그냥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면 그만이었지.
다만 덕분에 여행 간답시고 구워 놓은 음악 CD들은 고스란히 짐이 되어 버려서 그게 아쉬워.
우리가 받은 렌트카엔 말야, CD 가 안 달려 있더라고. 이런 낭패가..

여튼 여행 가기 전의 그 밤은 참 길고 험했어.

아침에 사고 수습 마무리 짓고, 렌트 받고 하다보니 11시가 넘었어.
원래 7시에 만나 출발하려 했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지.
그런데 4시간이나 미뤄진 약속시간에도, 늦는 사람들은 여전히 늦더라고.
더구나 약속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박모양은 우리 들 중 가장 늦는 만행을 저질렀지.

그래도 뭐.. 어차피 늦은 출발시간, 조금 늦어도 괜찮았어.
그런데 강남 터미널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한호형이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경찰이 나타나 불법주차 된 차 빼라고 협박하잖겠어?
난 렌트받은 차를 몰고, 호는 한호형 차를 운전하라 하고.. 경찰의 협박을 피해 슬금슬금 가고 있는데.
이번엔 이 녀석, 호가 안 보이네.
두리번 거려보니, 어느 틈에 반대편 차선으로 가 있잖겠어.

친구야, 우리는 저기 보이는 언덕 지나면 나오는 고속도로를 향해 가야 한단다..
친구에게 U턴해 저 앞으로 오라는 신호를 하고 슬금슬금 가고 있는데,
이 녀석 안 보이네.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느라 전화기도 안 챙겨 갔고. 지갑도 여기 있는데..
결국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 차를 세우고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그렇게 길거리에서 우리는 한시간 여를 보냈다.

시작부터 삐그덕대는 우리의 여행, 좌절. 묵념...


여튼, 여행은 시작되었다!

 /><br /><font color=탐스러운 복숭아.

저 백도는 열댓개에 몇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녀석이다.
그렇다고, 내가 저 비싼 복숭아를 사 먹을만큼 풍족하지도 않고.. ㅋ
실은 공짜로 얻은 것이다.

내려가면서 보니 길가에 좌판을 벌려 놓고 과일을 파는 곳이 많았다.
시골이라 과일이 쌀거야.. 하는 기대와는 달리, 과일은 무척 비쌌다.
알고 보니 원래 무지 비싼 과일만 선물셋트 처럼 포장해서 팔더군.

차에 내려 과일값을 물어 보고 망연해 하는 우리 일행에게, 복숭아를 하나씩 주셨다.
사지 않아도 좋으니 이 좋은 맛 보기나 하라는 참 고마운 인심.
극구 사양해도 주시는 그 마음 씀씀이에 내려가는 길이 잠시나마 즐거웠다.


 /><br /><font color=저녁이 다 되어서야.. 드디어 충주에 접어 들었다.

플라타너스가 양쪽으로 늘어선 멋진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꺼낸 건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못내 아쉬운 순간..


 /><br />충주 시내의 마트에 들러 부식거리를 사고, 필요한 것들을 점고한 다음.<br />숙박을 잡기 위해 수안보로 향했다.<br />수안보로 가던 중, 길가의 한적한 공원에 차를 세우고 바람을 맞았다.<br />무더운 날씨와 정체로 인한 짜증.<br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훌훌 날려 버렸었다.<br /><font style=첫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이튿날이다.

전날, 다들 피곤했던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술을 먹고는 모두 죽은 듯 잠들어 버렸다.
아니.. 모두 나처럼 그렇게 잠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 알고 보니 우리 방에서는 호가 혼자 술을 먹다 자고 건너 방에서는 의주가 혼자 술을 먹다 잠에 들었다니..
애석한 일이다. 하하..

아무튼, 그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12시가 되기도 전에 잠들었는데..
미인도 아닌 사람들이 늦잠까지 주무시나.
이거 법적으로 하자 없는건지 모르겠다.

나만 일찍 일어나 한시간 여를 밖에서 비비적대다가..
잠에서 깬 한호형과 대충 아침을 차려 먹고, 차로 월악산을 한바퀴 돌았다.
원래는 30분이 채 안 걸릴 코스일텐데.. 그 아침에도 차가 많이 막혀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br /><br /><font color=그래도, 역시 산과 강, 그 푸르름.
꽤 오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여튼, 그렇게 한 바퀴를 돈 후.. 내린 결론은.
애초에 목적했던 송계계곡이나 여타 국립공원 내 계곡은 사람도 너무 많고 정체도 심하다는 것.

 /><br /><br />수안보에서 충주로 흘러들어 가는 지류 중 한적한 곳을 택해 우리끼리 놀자는데 결론을 보고<br />놀만한 장소를 찾아<font color= 헤매기 시작했다.

그래, 그야말로 &amp;amp;quot;헤매기 시작했다&amp;amp;quot;.
한 시간 여를 헤매다 결국 선택한 곳은, 어제 저녁 수안보로 들어 가기 직전 차를 내렸던 공원의 냇가.
처음부터 그리로 갔으면 좋았을걸.. 하하..
하지만 그마저도 여행의 연장이라 생각하는 나는, 별반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데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여튼.. 과히 늦지 않은 시간, 또 아침에 일찍 일어 난 것 치고는 썩 이르지 않은 그 시간에..
그렇게 물놀이는 시작 됐다.

 /><br /><br />나와 호, 그리고 한호형은 정말 물 만난 고기 마냥 신나서 놀았고,<br />같이 간 으쥬를 비롯한 여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지들끼리 노는데..<br />그럴라면 같이 왜 놀러 왔대? ㅋㅋㅋ<br /><br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재밌게 놀았다!<br /><br /><img src=역시 여행은, 맘 맞는 사람. 또는 잘 아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으쥬가 사흘 동안 고생 좀 했겠어.. 미안타. ^^

 /><br /><br /><img src=이봐 이봐.. 이제 시작이라구..!  

 /><br /><br /><font style=이제야 말하자면, 이 수안보 인근은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고향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곳이 거의 없는데..
이 곳은 정말, 생각만 해도 정겨운 느낌이 나는..
내 유년 시절을 살찌운 곳이다.
산도, 물도.. 바람도.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다.

 /><br /><font color=한호형은 참 좋은 사람이다.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는 법도 없고, 겸손하고.
그는 많은 걸 베푸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나는 그에게서 여유와, 연륜을, 그리고 인생을 배운다.

 /><br />친절하신 으쥬씨의 마지막 컷.<br />물론, 웃자고 한 사진에 오해는 금물이다. ㅋㅋ<br /><br /><br />그렇게 하루가 또 저물고,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우리는.<br />그 밤을 또 그렇게.. 어이없이 보냈다.<br />이젠 바래져 버린 옛 기억. <br />이유도 과정도 결과도. <br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br /><br />그저 다시금 깨닫는 것은..<br /><font color=여행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
아쉬운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은 또 어김없이 밝아왔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여행 가서 처음으로 식당 밥을 먹었는데..
이 밥이 참, 맛이 뭐하더라.
반년 전에도 와서 먹어 봤었는데.. 그땐 정말 맛있었거든.
내가 적극 추천해서 간 식당인데, 맛이 이상해져 있는거야.
그때 그 맛이 아닌거지.

결국 여행 마지막 날까지도 나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뭐, 여행은 계획 따위 중요하지 않다니깐.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쿨럭.....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직도 잠이 덜깬 사람들을 깨워 귀경길에 오른 이유는..
그 무서운 정체행렬을 피하기 위함이었어.

 /><br /><br />다행히도, 아직 정체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서.. 보이는 대로 길이 무척 한산한 편이었지.<br />나중에 호법 쯤에서는 조금 막혔지만, 그나마도 중부 고속도로에 접어 드니 다시 소통 원활.<br /><br /><img src=나는 가끔, 그 길을 시원하게 달리는 꿈을 꾼다.

 /><br /><font style=아무리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던 여행이지만..
그래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오는 일은 못내 아쉬워.
저 터널의 끝처럼.. 다시 펼쳐질 일상을 내내 미뤄두고만 싶었지.

 /><br /><br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 왔어.<br />서울로 돌아와 한호형과 헤어지고 사람들을 집까지 데려다 준 다음,<br />호와 의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지.<br /><br /><font color=생각해 보면 참.. 한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던 여행같지 않던 여행이었다만.
역시 지나간 시간은 늘 그리워.
그 바람, 그 물살. 그리고 그 웃음소리들.

다시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분명 언젠가는 다시 여행기를 쓰고 있겠지.
그리고 우리 추억들도 그렇게 하나 둘 씩 늘어 갈 게다.
물론, 나이도 그렇게 먹어 갈테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