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검을 떡검이라 부르지 못 하는 사회 - 노회찬 전 의원 유죄 선고에 부쳐
1.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연일 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우리네 정가에, 또 한 차례 비보가 날아 들었다.
지난 2005년, 노회찬 전 의원이 안기부 X파일의 녹취록에 있던 떡검들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이
떡검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게 된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지리하게 끌어 오던 대법원 선고가 2월 14일 전격적으로 내려졌다.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 정지 1년, 피선거권 2년 제한 - 이 선고로 노회찬 전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여당의 막무가내식 뉴타운 공약에 밀려 쓴 잔을 마신 후,
절치부심하고 노원의 텃밭을 다져 4년 만에 여의도에 복귀 했는데 또 이렇게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우리 나이로 이제 57세, 만으로도 50대 중반을 넘긴 그다.
이렇게 아깝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데.. 정말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우리나라 정치인 중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참 어려운데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니, 다음 총선 때 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면 이미 그의 나이 60이다.
참으로,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2. 법의 해석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는가?
이번 사건은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아니 그보다, '법의 해석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해야 할까?
다음은 대법원의 판결문 중,
노회찬 전 의원의 행위가 왜 무죄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첫째, 그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거나, 불법 감청·녹음 등에 의하여 수집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중의 생명·신체·재산 기타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등과 같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하고, 둘째,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결과물을 취득함에 있어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하여서는 아니되며, 셋째, 그 보도가 불법 감청·녹음 등의 사실을 고발하거나 비상한 공적 관심사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한정되는 등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넷째, 그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하여야 한다.
판결문을 읽다 보면, 표면적으로 대법원은 최대한 공정한 체 하느라 애쓴 티가 난다.
또 누군가는, 통신보호비밀법에 양형 기준이 징역형 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지,
만약 벌금형이 있었더라면 아주 적은 금액의 벌금형이 내려졌을 거라고 대법원의 손을 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그 생각에 일정 부분 동의하긴 하지만, 법원이 무리하게 엄격한 법 적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노회찬 전 의원의 실명 공개가 별로 중대한 일도 아니었고,
그로 인해 얻어진 공익이 그리 크지도 않다는 판결문의 내용을 읽어 보면 - 이게 과연 바른 판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노회찬 전 의원이 떡검들의 명단을 공개한 이유가 그저 떡검들을 모욕 주고 망신 주려고 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몇 번을 곱씹어도 모를 일이다.
명단 공개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공익적 가치가 크지도 않다니.
만약 떡검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기소라도 된 상황이면 그 말이 맞지만,
범죄사실을 아예 없던 일로 덮은 차에 나온 정의로운 외침이 아니었던가?
매년 연말연시의 단골 뉴스 중 하나인 국가경쟁력 운운하는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저해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부정부패를 꼽는다.
그거 하나만 떠올려봐도, 떡검들의 부패에 대한 고발은 공익적 가치가 매우 큰 것 같은데 말이다.
대법원 쯤 되면, 법조문에 대한 기계적 해석만 해서는 곤란하다.
노회찬 전 의원이 왜 떡검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명단 공개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대한 다각적 검토가 필요했다고 본다.
더구나 통신비밀보호법이 생겨난 취지에 대해서 상기해 보더라도, 이번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법의 해석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3. 삼성 - 그 추악한 얼굴을 마주한 대가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406802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기부 X파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한 이상호 기자의 책이나, 그간 인터뷰 등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는데
최근 이상호 기자가 CBS와 했던 인터뷰에 보다 소상하게 나와 있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1997년, 지금은 인터넷 댓글을 주로 달고 있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의 '미림'이란 팀에서 삼성 이학수와 중앙일보 홍석현 간의 대화를 도청했다.
이때 녹취된 대화에서 삼성이 정계와 법조계에 로비를 벌인 내용
- 누구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를 전달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자주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 나와 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서 X파일의 존재는 잊혀지게 됐다(과정은 뉴스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이후 2005년, 참여정부가 중앙일보의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내정하게 되는데,
당시 시나리오는 홍석현이 주미대사를 마치고 UN 사무총장 - 대통령이 되는 테크를 탄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나라가 되는 것이었겠지.
그런데 이 X파일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이 삼성과 홍석현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는 차에
이를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언론에 이를 공개했다.
그리고 그 후의 일들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MBC 내에서 보도를 위한 외로운 투쟁을 했던 이상호 기자.
이상호 기자에게 녹취록을 받아 보도한 월간조선의 김영광 편집장.
그리고 이 사건이 유야무야 흐지부지 넘어 가던 때 떡검들의 처벌을 요구하며 떡검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
이렇게 셋은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리고 녹취록에 있던 범죄 사실을 공모하고, 가담하고, 또 그 결과 뇌물을 주고 받은 사람들은 모두 무죄다.
이른바 독수독과론에 따라, 범죄 사실 자체가 덮어져 버렸다.
삼성의 추악한 얼굴을 마주한 후, 그를 추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유죄고 그 추함과 손잡은 사람들은 무죄가 된다.
참 좋은 법이다.
누구를 위한 좋은 법인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
4. 통신비밀보호법, 검찰, 사법부 - 이대로 괜찮은가?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다.
당장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에 통신비밀보호법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개정안 비판, 문제점 등 그 문제를 지적한 내용이 많이 뜬다.
사실 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조문 하나 하나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이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고,
보완이 이뤄지기 전까지 사법부는 법조문에 대한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적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힘 주어 말할 수 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독수독과(毒樹毒果)론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자.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는 증거로 쓸 수 없으니, 녹취된 내용은 모두 덮어 버린다.
그래서 이번 삼성 X파일에서도 녹취록에 있던 검사들에 대해서는 모두 불기소 처분 되었다.
아예 그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법적으로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를 시켜 일부러 도청을 당한 후 해당 도청 내용이 공개된다.
그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피해자가 되고, 해당 내용은 모두 불문에 붙이게 된다.
과연 정의로운가?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걸?
그래서 이에 대해 반발하여, 뇌물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했는데
공익적 가치가 없다는 말로 일축하고 외려 공개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정의로운가, 다시 묻고 싶다.
그리고 검찰과 사법부.
검찰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기소권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만큼 스스로 더욱 깨끗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부 비리에 어쩜 이렇게 무감할 수 있는가?
검찰 수사는 고발을 통해서도 이뤄지지만, 인지를 통해 시작되기도 한다.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정적의 단골 식당까지 뒤져대는 철두철미함을 발휘하는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검찰은 독수독과론에 기대 내부 비리를 그냥 덮고 말아 버렸다.
위에서 얘기했던 독수독과론의 맹점을 이용해 떡검들을 비호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자성은 커녕 오히려 떡검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녹취록을 공개한 사람들을 모조리 범죄자로 몰고 갔다.
그리고 사법부는 그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이 땅에서 정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슬픈 일이다 - 떡검을 떡검이라 부르지 못 하는 것은.
그리고 떡검과 떡검에 돈을 댄 집단을 처벌하라고 규탄하지 못 하는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검사 영감님이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라는 사실이.
참으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