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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사르..카이사르..
    Letter from Kunner 2004. 5. 18. 12:19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이를 꼽으라면, 카이사르가 있다.

    율리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Caesar, Julius Gaius).
    보통 쥴리어스 시져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알고 있는 로마 최고의 정치가이며 군인이자 3년만에 5백년 로마제정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시야를 비잔틴까지 비약시키면 무려 1500년이 된다)

    사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바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의 열광적인 팬으로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도무지 카이사르를 존경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유추적 접근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나의 역사관이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과 일치함은 둘째치고,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 전쟁기』때문에라도 카이사르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서술은 사실과 근접하다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카이사르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위인됨이 워낙 걸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무척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면서도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에 있다.
    인생 자체가 한편의 희곡을 보는 것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삶은 어려서부터 특출남을 드러내는 여느 위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카이사르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인으로 꼽는 나폴레옹을 보자.
    나폴레옹은 카이사르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위인이다.
    그 역시 다른 많은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굴곡 많은 인생을 살지만, 이미 스물 여섯 나이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될 정도로 특출난 인재였다.
    그의 삶을 더듬어 보자면, 도저히 저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극한적인 삶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을 철저히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독단적이며, 온몸에 에너지가 넘치는..
    생과 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신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끌어내리는 그의 족적은, 말 그대로 위인의 삶이다.
    이런 초인적인 경계에 선 위인들을, 나는 경외한다.
    공경하지만, 두려움도 함께 한다는 뜻이다.
    나 역시 스물 여섯,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되었던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두려움이 되어 나를 감싸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카이사르는 나에게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단호해야 할 곳에서는 가차없이, 하지만 때를 기다려야 할 때는 태산처럼 기다리는 여유가 그의 삶 곳곳에서 묻어 난다.

    지나친 자기 위안이라 비웃음을 살지 모르지만,
    카이사르가 나이 마흔에 이르기까지 백수에 바람둥이에 엄청난 부채를 진 말 그대로 방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가 더 좋을지 모르겠다. 하하..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된 스물 여섯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되어 최고 통수권의 기틀을 다지게 된 나이 마흔에..
    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때문에 그가 더 좋은지 모르겠다.
    역시 지나친 자기위안일까.. 하하..

    카이사르의 독주에 불안을 느낀 원로원이 급기야 카이사르에게 무장해제하고 본국으로 돌아 오라는 소환명령을 내리게 되었을 때, 그는 본국 로마의 북서쪽 경계를 이루는 루비콘 강을 앞두고 하루밤을 지새는 장고를 하게 된다.
    우리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 잘 알고 있는 루비콘 도하기.
    (하지만 카이사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그리스 시의 한 귀절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한다.)

    카이사르는 휘하의 전 장병에게 아주 진솔한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상이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그의 이 말을 떠올릴때 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자신감에 넘친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사람을 잘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곤 한다.
    보통 다른 사람들 같으면,
    "추악한 원로원을 부수고 정의를 이룩하자" 와 비슷한 결의문을 선포했을 법도 한데, 카이사르는 그러지 않았다.

    언젠가 읽은 성인과 일반인의 차이를 얘기하던 사설에서 이와 비슷한 뉘앙스를 받은 바 있다.

    "오직 죄 없는 자들만 이 여자를 돌로 치라" 는 Jesus의 말씀.
    아마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막달라와 함께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카이사르의 경우도 비슷해서, 존경할 가치가 없는 자가 군단을 앞에 두고 사실상 반란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저런 말을 했다면, 군사들의 동요로 제일 먼저 목없는 시체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달랐다. 마치 죄 없는 자들만 돌로 치라던 Jesus처럼..
    (Jesus와 카이사르를 평면 비교하는 것이 아니니 혹여 쓸데 없는 태클은 사양이다.)

    루비콘을 건너면 인간세상이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강을 건널 수 밖에 없던 그의 선택.
    그 선택을 위한 고민, 그리고 배신.
    루비콘을 직면한 그의 고민과 의지를 한낱 보잘것 없는 내가 다 따를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린다.
    가능한 내 삶의 그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루비콘을 마주한 카이사르를 따르겠노라고.

    나는 늘 초심처럼 최선을 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하루 24시간, 그 1분 1초를 스스로의 의지에 두고자 했던 나폴레옹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내 삶 속, 그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혹 잊지 않고 루비콘을 마주한 카이사르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루비콘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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