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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관람기
    세상 사는 이야기/시사人Kunner 2010. 12. 18. 18:11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탁현민 제작, 여균동 연출, 명계남 주연.



    *

    지난 번 홍대에 이어, 오늘로 두번째 아큐를 보고 왔다.
    그간 몇번이나 다시 보러 가야지, 하고 마음 먹었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계획이 계속 틀어져 결국 두달여가 지난 다음에야 다시 보게 됐다.

    이미 본 연극이어서 얼개나 줄거리, 개략적인 대사를 알고 있음에도.. 
    만족도는 처음 이상이었다.
    명배우님의 연기는 더욱 탄탄해졌고, 대사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홍대에서는 좁은 공간에 비해 사람이 무척 많다보니 몰입에 방해가 됐는데,
    (심지어 통로에 서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시간이나..)
    연극 관계자들에게나 배우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사람이 적당히 있는 편이 보기에는 더 좋았다.

    사실 아큐를 보러 오는 사람이 적은 것 보다 많은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이미 두달도 더 전에 시작한 연극이었고, 막을 내린지도 꽤 됐었다. 
    볼 사람은 진작에 와서 봤을거다.

    게다가 이런 이슈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당장 우리 회사 애들만 놓고 봐도, 몇번이나 가서 보라고 얘기했어도 실제로 보려고 맘 먹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거다.
    두번이 세번이 되고, 다시 네번이 되는 나의 얘기는 그저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되겠지.
    그러니 점점 나는 입을 다물게 되고.. 

    그렇지만, 금요일 저녁이고, 날씨가 요며칠에 비해서 무척 포근했다는 걸 떠올려 보면..
    그리고 그 시간대 대학로에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였던걸 감안한다면..
    관람객 수는 너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많은 손해를 보고 있을 것이 틀림 없는 연극 - 애초에 수익을 위한 연극일리가 없지만, 이 연극의 막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그리고 무대에 선 사람들도 누군가를 부양해야 하고 스스로 먹고 마셔야 하는 생활인일텐데.. 하는 등등의 생각에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
    그렇지만 뭐 하나 바꿔 볼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은 그저 빈 주먹에 손톱 자국 하나 더 남길 뿐이다.

    회사 끝나자마자 달려 왔는데도 연극 5분 전이었다.
    그렇지만 '좀 늦더라도 은행에서 돈을 더 뽑아 오는거였어' 하는 자책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큐를 보고 난 후 머릿 속에 많은 생각들이 저마다 아우성치다보니, 정작 연극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곁가지로만 떠돌고 있다.
    이제 연극 얘기 해야지? ^^;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 뿌려지는 가사와 함께 음악이 흘러 나온다.
    지난 번 연극에서 이 노래의 이름을 들었는데, 그만 까먹어 버렸다.

    무심코 누른 셔터에 잡힌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I shall be released.
        난 해방될거야.

    해방이라...
    그렇다면 우리를 구속한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해방 될 수 있을까?

    뭐 이런 저런 복잡한.. 기타 등등의 마음으로 연극은 시작한다.



    **

    늘 그렇듯 연극은 여균동 감독님의 설명으로 시작된다.


    원래는 탁현민 교수님의 역할이라는데..
    지난 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내가 갈 때면 늘 탁현민 교수님은 부재중이고 여균동 감독님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나와는 연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트윗에서조차!! 명배우님이나 여감독님은 나와 맞팔했는데, 탁교수님은 나의 트윗 따윈 아웃오브 안중이다.)

    지난 번의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날은 탁현민 교수님의 회사인 P당의 워크샵이 있는 날이어서 그랬단다.
    아마도 그는.. 금요일 오후에 워크샵을 가는 행위는 직원들의 주말을 망치는 주책스런 사장의 만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게다.


    뭐 여튼.. 다시 연극 얘기 gogo.

    "
    종종 오해를 하곤 하는데, 만약 이 연극을 보면서 누군가 떠올려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연극에서 다루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맞습니다.
    "

    라는 말(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저런 의미다)로 시작하는 연극은 시작부터 대놓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비아냥거린다.
    조롱과 멸시, 비아냥이라는 것이 불편한 마음과 짜증스러움이 아니라 뭔가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건 참..
    MB 치하,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리고 암전된 무대 뒤에서 드디어 명배우님 등장.
    이제부터 그와 여감독님의 모노 아닌 모노드라마가 시작된다.

    연극의 내용은 코르마 민주공화국의 전직 총통인 아르피쿠히 마쿠가 애완동물학대죄 라는 어이없는 죄목으로 수감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고 많은 죄 중에 '애완동물 학대죄' 라는 어이없는 죄로 전직 국가 원수를 기소한다.
    어디선가 실제로 본, 익숙한 상황이지 않은가?
    포괄적 뇌물죄라니, 정말이지 개가 웃을 일이었다. 아니, 쥐가 웃을 일..


    아르피쿠히 마쿠라는 이름은 줄여서 연극의 이름이기도 한 아큐가 되는데, 이 아큐는 극중 대사에서도 나오듯 아큐정전의 '阿Q'에서 따온 것이다. 
    사실 그 아큐는.. 조롱하고 멸시할 대상의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권리를 침해 받고, 자유를 억압받고..
    정당한 몫을 가로채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도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심지어 예산을 날치기하고 권력을 통해 국가 재산을 빼돌리며, 부조리와 패악을 일삼는 정권과 국회.
    주식회사의 이윤을 은닉하여 수조원씩 비자금으로 조성했는데도 그냥 세금 포탈 정도의 추징금만 내면 비자금이 개인 돈으로 인정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분노할 줄 모르고 그저 원래 그런거지 뭐, 하는 체념과 그들은 썩었다며 혼자 고고한 척 하는 것.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는 양비론자, 더러운 정치는 관심 안 가진다고 말하면 쿨한 줄 아는 정신 박약아들. 
    되지도 않을 공상과 망상으로 비열한 자기만족이나 하고 있는 나홀로 잘난 지식인들.
    그런 모습이 바로 조롱받고 멸시 받아야 할 진짜 아큐가 아닐까.



    지난 번 연극에 비해 시류에 맞춰 바뀐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
    이렇게 달라져가는 연극이니 두번이 아니라 세번, 네번.. 몇번이라도 좋을 듯 하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아큐 제작진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표현한 것일테니.

    사진은 뭐.. 뻔하게도 보온 상수를 노린 이야기다.
    중간에 김성회 의원(이라 쓰고 개자식이라 읽자)과 아큐의 전화 통화를 패러디한 장면도 나온다.
    그 잔뜩 과장된 대사들에 폭소를 하게 되는데.. 
    한바탕 웃고 난 후, 아마도 현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니 퍽 씁쓸해진다.





    1시간 반 정도, 딱히 막의 오름과 내림이 없는 상황에서 연극은 중간중간, 시점의 변화를 통해 긴장을 늦추고 혹시 있을 지 모를 지루함을 달랜다.
    대체로 연습을 하던 명배우님과 이를 연출하는 여감독님의 실랑이가 주된 내용이다.

    아큐의 대사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흐름이 풍자와 해학이라면, 현실의 명계남의 대사 속에는 그보다 날선 과격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달래 긴장을 풀어내는 여균동의 조정으로 연극은 다시 본 궤도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 연극을 봤을 때는 이런 장면들이 몹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여감독님이 또 언제 등장할지 내심 기대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사실, 적정거리를 유지한 풍자와 해학보다 무모하고 날선 과격이 더 좋았다.


    이렇게 연극은 절정으로 치달아, 결국 아큐는 불명예스런 법정 선고를 받는 것으로 극을 마무리하게 된다.
    여기서 다소 쌩뚱맞은 총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는 총 맞아 죽는 것으로 끝내려다가 이런 결말이 지나치게 비장감이 느껴진다는 의견, 그리고 그런 후련한 죽음보다는 계속해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이 더해져 총 맞고 난 후에 안 죽고 그냥 어물쩡 넘어 가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라 한다.

    아마 저런 이유에도 총 맞는 장면을 빼지 않은 것은 총성과 피빛이 주는 통쾌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이리라.
    이 부분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

    연극이 끝나고 나면, 연출자와 배우가 무대 인사를 한다.


    <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이 어쩐지 쑥스럽고 실례고 한 것 같아, 또 다른 관객들에게 실례인 것 같아 카메라를 안 보이게 밑으로 내려 잡았는데.. 그런 맘을 헤아려 주시는지 포즈까지 취해주셨다. ^^ >


    그리고 짧고 아쉬운 관객과의 시간을 갖는다.
    보는 사람에게는 고작 2시간이지만..
    이 연극을 준비하고, 막을 올린 사람들에게는 하루 종일이며 매일 매일의 노력의 결과다.
    그런 점에서 극이 끝나고 난 후 얼른 마치고 쉬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는 사람에게는.. 어쨌든 2시간 이어서.. 극을 마친 후 갖는 관객과의 시간이 너무나 짧고 또 짧게 느껴진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고,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은데..
    현실은 어쨌든 2시간이다.


    아무튼 이때 질문을 한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명계남 배우님이 직접 쓰신 글씨를 선물로 준다.

    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는 두가지 질문을 했다.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을 백배 담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1. 극중에서 권력자의 배후에 있는 존재는 자본주의 체제를 말함인가?

    2.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공고화되고, 신자유주의가 절대가치로 전 사회에 강요되는 이 시점에서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는가? 
    국민의 참여를 통한 투표권의 정당한 행사 - 그리고 이를 통한 정권교체를 말하는데, 실제로 나치와 같은 파쇼는 폭력과 억압이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됐다. 명배우님이 했던 얘기처럼, 이명박 정부 역시 4.19 정신과 6월 항쟁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헌법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권력이다.
    과연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가 만능 해결책인가?
    그렇다면 지난 참여정부 다음으로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아큐를 통해 얻어 가야 할 것, 우리가 아큐를 통해 생각해 봐야 할 진짜 함의는 무엇인가?


    잠깐의 질문과 답변으로 해결될 이야기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큐를 통해 그 답을 모두 얻으리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한 시간 반 동안 그의 분노와 울분을 들은 답답한 마음이 너무 커 질문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감독님과 명배우님의 답변을 통해 절반의 후련함과 절반의 숙제를 안고 왔다.


    행동하라.
    그렇지만 무엇을?


    ****

    선물을 받고 싶은 나의 부담스런 눈빛에 결국 여감독님은 GG를 선언했다.


    <그런데 지난 번엔 액자에 담아 주셨었는데.. 이제는 포스터와 함께 돌돌 말아 주셨다. 관객이 줄어든 탓이렸다. ㅠ>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강물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방명록 글귀에서 따 온 문장이라 한다.
    집에 돌아와 글자 하나 하나를 보며..
    그리운 마음에 또 한숨이다.

    그가 번뇌로 생과 사의 갈림에 섰을 때.. 나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불과 그와 십수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도.
    또 다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함에 다시금 한숨이다.



    *****

    이런 이야기를 맘껏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으면 하는 갈망으로 언제나 목마르다.
    며칠 전 P당의 구인공고 트윗을 보았다.
    다른 모든 조건 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정치적 견해가 같아야 한다, 유명한 사람들 많이 만나게 된다. 그보다 더욱 훌륭해져라." 하는 이야기.

    처한 현실이 현실인지라 입사지원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한 일이었지만 내년엔 다르리라, 하며 아쉬운 맘을 달랜다.



    그리고 아큐.




    조금이나마 아쉬움과 갈증을 풀어주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아직 못 본 사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가서 보자.
    영화가 아닌 연극의 특성 상.. 공연 더 안한다 하면 그땐 늦으니 말이다.

    후불제 연극이니 기대보다 못했다거나, 돈 아깝다는 등 하는 원망 따윈 하지 않아도 되니까..
    가지 않은 변명거리 백개 만드느니, 그저 한번 움직이는게 더 쉬운 일이다.
    그 편이 어떻게든 더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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