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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내라 동국아...
    쉼을 위한 이야기/축구 2010. 6. 27.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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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기만 한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마치고.. 몇 시간 동안이나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쉽다. 참 아쉽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아쉬움은 우리나라가 8강에 오르지 못해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게 있어 대표팀의 성적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2006년을 기점으로 점점 대표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사그라들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대표팀의 경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A팀은 물론 올림픽이나 청소년 대표팀은 말 할 것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대표팀에 이동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게 아니라 이동국을 좋아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
    그렇지만 K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여전한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닌 듯 하다.
    더구나 내가 지지하는 팀은 전북이 아니라 수원이니까..

    그러다 지난 해 부터 이동국이 다시 대표팀에 들어오게 됐다.
    대표팀에 대한 나의 관심도 다시 살아났으나..
    그 관심은 대개 이동국의 출전 여부에 따라 갈렸다.
    보통 전반전에만 투입되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교체되기 일쑤인 당시에는.. 전반만 열심히 보고 후반은 아예 안 보기도 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 역시 스스로 돌이켜봐도 좀처럼 이해가 되진 않지만..
    내게 이동국이란 그런 존재다.

    속된 말로 동빠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아니라고 부인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나는 그를 격하게 지지하기 때문에.

    **
    나는 언제나, 그가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1로 지고 있는 후반 41분의 결정적 찬스를 날려 버려, 많은 사람들에게 원성을 받고 있는 지금에도 말이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대개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히 반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깬다는 것은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실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닐테고, 더구나 이동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깬다는 것이 어떤 것으로든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동국에 대해서만큼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도 아쉽고 아프다.
    뉴스에 달려 있는 저마다의 댓글에서 마치 이번 패배의 모든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처럼 물어 뜯고 달려 드는 것은.. 참 아쉽고 아프다.


    ***
    언젠가 누군가.. 내게 왜 그렇게 이동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패한 선수 중 하나 일 뿐이라며 말이다.
    그래. 그 말처럼 이동국은 실패한 선수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분데스리가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실패, 2002년 월드컵 엔트리 탈락, 2006년 월드컵 부상으로 인한 엔트리 탈락 등 그의 인생에는 참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선수가 아니며, 그의 인생이 실패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실패했는지의 여부는 그의 인생의 끝에서나 결정될 문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지 실패나 성공의 이분법으로 재단될 수는 없다.
    하물며 극한까지 내몰린 상태에서도 꾸역꾸역 다시 정상을 위해 올라 온 한 선수의, 한 인간의 인생이 어떻게 실패라는 말로 규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가 축구 선수로서 보여 준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지만, 같은 세대를 살아 가는 한 인간으로서 보여 준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딛고 일어나는..
    나 같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나락에서 다시 올라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힘을 얻는지 모른다.

    나는 그를 단순히 축구 선수로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
    나의 2010년 월드컵은 30분이었다.
    고작 30분이었다.

    10분 남짓하던 아르헨티나 전은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대체 뭘 하란 말인가.

    그리고 두 경기 만에 그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그에게 기회는 왔고, 다시 갔다.
    그렇게 기회는.. 진한 아쉬움만 남긴 채 가 버렸다.

    그 30분이 참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아니.. 어쩌면 바뀐 것은 별로 없고, 그나마 남은 것도 다시는 바뀌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패배는 쓰리고 아픈 결과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결과가 앞으로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 지 모르므로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우리가 이제 30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이제 슬슬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경험이, 오늘의 쓰라림이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그걸 축구 경기를 통해 풀어 낸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그 30분 밖에 안 되는 시간이 너무도 아쉽고, 아쉬운 것이다.


    *****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하던데..
    아플거다.. 혼란스러울거다.

    그렇지만..
    인생은 끝이 아니다.

    나의 인생이 그렇듯, 너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게 마련이며, 그라운드와 공은 언제나처럼 너를 맞아 줄 것이다.
    심약한 성격이라.. 금방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보여 준 모습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위로는 꼭 해 주고 싶다.

    힘내라, 동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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