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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 권하는 사회, 인생역전을 권하는 사회..
    세상 사는 이야기/시사人Kunner 2003. 2. 9. 11:08
    언젠가부터 전철 승강장에 있는 LCD 광고판에 인생역전이라는 모토를 내건 로또의 광고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전철 안은 물론이고 전철 바깥 역시 어딜 가도 로또 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로또 얘기를 하고, 신문을 봐도 뉴스를 봐도 첫머리는 늘 로또 타령이다.

    이처럼 선풍적인 로또의 인기몰이는 로또라는 복권이 가진 특수성에 기인한다.
    복권을 사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당첨금이 불어나고, 1등 당첨자가 없을 경우 다음으로 1등 당첨금을 이월하는 로또의 특징으로 인해, 이미 복권 발행 사상 최고액의 당첨금이 지급된 로또는 당첨금이 이월될 경우, 그 기대심리로 인해 판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실제로 이번 회차에서 1위에게 지급될 당첨금은 850억을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1주일동안 판매된 로또가 2천억을 육박한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빚을 내서 몇천장의 로또를 샀다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공동구매 형식으로 수십명이 수십만원씩 내서 로또를 산 다음 당첨금을 공동분배하는 것을 구상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고도 한다.

    근래의 로또 사태..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금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게는 수십억, 크게는 얼마가 될 지 모를 로또의 당첨금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모순 속에서 로또라는 거액의 당첨금이 걸린 복권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을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이 복권을 살 때 마다 당첨금은 더욱 늘고, 늘어난 당첨금에 대한 기대심리로 또 복권을 사고, 또 그렇게 당첨금이 늘어나는..
    이런 극단적인 악순환이 일주일(이월된다면 2주일)마다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로또의 거대한 당첨금을 기대하며 일주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또는 그저 레져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준은 이미 지나버렸다. 정도가 지나치다는 말이다.
    뉴스에서 본 인터뷰에서 어떤 회사원은 설 보너스 60만원을 그대로 쏟아 붇고는 당첨되면 대박, 안 되면 보너스를 못 탄 것으로 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은행잔고를 모두 털고도 모자라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 거금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액수를 투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로또를 산 많은 사람들은 "당첨만 된다면..." 하는 생각속에 자기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 지며, 당첨번호 추첨 후에는 깨진 꿈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를 크게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아쉬움으로, 오기로 또 로또에 손을 대게 되고, 그런 악순환은 반복되어 마약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이 되어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로또가 자살이나 각종 중범죄의 원인이 되는 일이 꼭 생기고 말 것이다.
    그런 사태는 이미 예견되고 있다.
    이번 10회차 로또를 사기 위해 수천만원의 빚을 진 사람은 적어도 한 장 이상의 2등 당첨이 되야 적자를 면할 수 있을텐데, 그보다 훨씬 적은 당첨액 또는 꽝이 됐을 때,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모든 걸 잊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건강한 자신의 삶을 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로또같은 불확실한 미래에 많은 빚을 질 정도로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히 일부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될는지는 생각하면 할 수록 암담할 뿐이다.

    현진건은 그의 작품에서 일제시대가 술 권하는 사회 라고 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 지식인들은 일본인의 개가 되거나, 술을 마시며 인생한탄이나 하는 두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풀어 낸 것이다.
    나는 이 시대가 로또 권하는 사회 라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병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남은 인생이 결정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는 신분제의 쳇바퀴 속을 굴러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하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출발선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달리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고, 그런 구조 속에서 구성원들간의 위화감은 더욱 더 팽배해 질 수 밖에 없다.
    또한 평생을 통해 그 쳇바퀴를 돌아야만 하는 대다수의 무산계층은 가진 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동경 속에서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지만 헌법에 명시된 기회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 신분의 수직이동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인간의 정치이념 중 가장 완벽하다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봉건제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는 것이다.
    단지 봉건제에서는 신분이 명문화 되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의 차이일까?
    물론, 신분의 수직이동의 가능성은 봉건제에 비해 언제나 열려 있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 역시 실제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능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염두해 둘 필요가 없다.
    있는 놈은 항상 있고, 없는 놈은 항상 없다는 식의 논리는 이미 절대 다수의 무산계층의 머릿속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어서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에 이르고 그런 계층간의 불협화음 속에 국민의 단합은 물론, 더 나아가 인권이 더 이상 人權이 되지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지금에야 조금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가진 자들의 인권은 人權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동물과는 약간 다르다.. 는 정도의 인식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아니,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동물보다 일은 잘 하되 도무지 애완동물처럼 예뻐할 수는 없는..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았을까?
    이런 사실은 지난 반세기의 역사와 그 속에서 스러져 간 전태일 의사가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사회적 약자의 인권은 여전히 인권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그것은 결국 못 가진 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전체 국민들 중 극소수에 불과한 가진 자들이 절대 다수를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사회... 일단 여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또한 엄청나게 많은 타자를 할애해야 하니 말이다..

    사유재산에 대해 철저히 보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일견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본다.
    가진 자의 사유재산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인생을 시작하면서 맞은 행운 - 부모를 잘 만난 - 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나아가, 그 부모는 어떤 경위를 통해 재벌이라는 입지를 굳히게 되었는가?
    그것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지난 역사 속에 우리나라의 법이라는 것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억압하고 단속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부를 쌓은 과정에 대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부를 얻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누구와 어떻게 했으며 이익배분을 어떻게 했느냐를 알아야만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질문에서 당당할 사람은 적어도 이 땅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볼 때, 이 땅의 부자들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구한말에서 시작되어 일제시대를 거치며 철저한 친일매국행각으로 재산을 쌓아 온 부류 - 구한말 이전은 봉건제 사회이므로 말 할 필요가 없다. 또 해방 이후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이뤄내지 못한 이승만 정권은 반민족적 결정체로써 비판받아 마땅하다.
    둘째, 해방 이후 미군정에 빌붙어 제2의 매국행각을 벌여 재산을 쌓아 온 부류 - 대개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루트를 잘 따르고 있다. 기회를 노리고 양심을 팔아 넘기는 무리들은 전민족을 상대로 사기를 쳐 수많은 재산을 착복했다.
    셋째,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전두환, 노태우의 군부정권까지 군부에 빌붙어 재산을 쌓아 온 부류 - 군부는 비리공화국으로 일컬어 질만큼 로비를 통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 전국의 크고 작은 개발계획들이 사전에 흘려져 땅값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이들 중 역시 절대 다수가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다. 아는가? 강남의 부자라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임을..

    위의 부류에서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에서도 여전히 로비와 각종 비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이 땅에 잘 살고 있다는 사람 들 중 자신의 노력으로 떳떳하게 돈을 번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맞을 정도이다.

    단, 어려운 환경에서 철저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거부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차범근 같은 사람을 꼽으려 한다.
    하루 세 끼는 물론 두끼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든 환경에서 그는 단연 자신의 능력만으로 거액의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확률을 따져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극소수여서 대다수의 무산계층에 희망적인 메세지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개인의 능력적 부분에 있어서도, 날로 부익부빈익빈은 가속화 되고 있다.
    어렸을 때 부터 각종 고급교육을 받고, 남들은 평생 한번 갈까 말까한 해외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갖춘 사람과 생계유지를 위해 어렸을 때 부터 발벗고 나서야만 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너무도 극명한 것이다.
    그렇게 좀 더 나이를 먹게 되고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면 그 차이는 말로 설명할 수 조차 없다.
    너무 극단적인 비교였나?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비교가 아니더라도,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조차 상류층 사람들과는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조차 없다.
    그리고 그렇게 철저한 불평등 속에서 신분의 상승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무산계층은 그토록 바라던 신분의 상승 앞에서 필연적으로 가치관의 붕괴를 가지게 된다.
    가진 자들의 세계에 편입할 수 있으려면 그들에 맞춰 자신의 가치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대개 이전의 어려움을 잊어 버리고, 못 가진 자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 버리고, 이른바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가치관을 바꾸지 못하면 더 이상 이 땅의 가진 자 들과 레벨을 함께 할 수 없다. 신분상승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차범근을 성공한 케이스라고 꼽은 절대적인 이유는, 그가 가진 돈의 양보다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한 후에도 가진 자의 편에 서서 못 가진 자를 억압하거나 하지 않았던 삶의 자세 때문이다.
    신분상승이 결국 자신의 본질을 흐리고 인생을 더럽게 살게 하는 원인이 되는.. 정말 우습게도 슬픈 이 땅의 현실이다.

    해 봐야 속쓰리기만 한 말이 너무 길어졌다.
    다만, 이런 사회적, 경제적 모순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얘기가 진행될 수 없으므로 불가피했음을 이해하라.
    이런 얘기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얘기를 풀어낼 수 있겠지만, 답답한 마음을 잠시 접기로 한다. 혹여 이런 일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 진지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다만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이 땅에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린 것은 이제 반 세기가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가 겪었던 자본주의의 병폐는 지난 2백년 전 유럽에서 있었던 일들과 흡사하다.
    2백년의 유럽 자본주의 역사를 다 따라잡기에는 아직 턱 없이 모자라지만 이제 반쯤 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유럽의 자본주의보다 한 세기 정도 뒤쳐져 있다.
    반세기 동안 한 세기의 역사를 따라잡은 것은 분명 괄목한 일이지만, 이미 유럽에서 2백년 전에 겪은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의 잘못된 지식과 일제 - 미군정에 이어진 비참한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절대친일, 절대친미주의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하모니로,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대상에 맞게 쓰지 못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선진화는 곧 서구화라는 등식이 성립된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일어난 일이기도 하며 한마디로 열강제국주의의 폐혜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민중의 자각이 이루어 지게 되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1%의 상류층을 위해 99%의 국민이 억압받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식이 성장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뤄지고, 잘못된 구조를 타파하여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는 세상이 열려야 한다.
    사회복지가 확충되어 기본적인 조건의 평등화가 이뤄지고 노력의 정도에 따른 소득의 공평한 재분배가 이뤄져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천민자본주의의 코드에서 해방되는 사회가 분명 와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 지고, 지난 날의 사회주의의 도전과 같은(이번엔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념의 재대결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번외)
    이념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념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또 전쟁의 겁화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념이 아니라 인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이념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고 구성원의 자발적 동의를 거친 혁명이 아닌 폭력적 유혈혁명은 지양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로또 권하는 사회는 그런 가능성마저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
    이 땅의 기성세대는 논외로 하고, 젊은 층과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도 한탕주의에 물들어 열심히 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백번 기성세대들의 잘못이다.
    과정과 동기는 무시한 채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던 지난 반세기의 암울한 그림자인 것이다.

    최근 일파만파로 커진 로또 사태로 인해 국민의 정부는 카지노로 시작해 로또로 끝을 맺어 결국 5년 동안 철저히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에게 이중 삼중의 혈세를 메겨 가뜩이나 심한 가정부채에 부채질을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디,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일어난 전국민적 한탕주의를 지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현명한 대처방안을 세워 더 이상 로또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건강한 레져문화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처방안은 몇가지로 나뉠 수 있다.
    우선 로또로 인한 준조세 수입과 지출을 명확하게 밝혀 로또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사회복지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얘기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너무 많이 나온 얘기이므로 식상하지만, 공공사업 중 하나인 복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당첨금의 몰아주기식 배분률을 조정하여, 2등과 3등에 나눠주는 배분률를 늘리고 1등 배분률을 줄여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당첨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1등 당첨액이 줄어드는 대신 고액당첨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로또의 안정적인 재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계몽활동으로 복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가를 국민들에게 널리 선전하고(이것은 일견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담배에 흡연경고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로또만이라도 일인당 복권구입 한도를 강력히 제한하여 사람들이 대박의 꿈을 좇아 가산을 탕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로또 정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미 반민족 세력 숙청과 재산의 공평 분배의 시점을 실기한 상태에서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혁명을 가져 올 수는 없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더라도, 한 나라의 GNP에 걸맞는 국민소득을 전 국민이 고루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의 보완이 시급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주창한 여러 경제정책들은 과연 노동당 답게 혁신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런 경제원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곧 사회주의가 되는 것인양 착각하고 혼란스러워 하는데,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했는지 반증하는 것일뿐 그 진실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은 노동당이 보수당과 함께 영국 2대 정당이라고 하는 점을 상기해 보면, 그동안 우익 일변도였던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스운 꼴을 한 반쪽 민주주의 국가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로또 얘기를 하다 이 얘기 저 얘기 많이도 넘나 들었다.
    얘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 개인적으로 아직 정리되지도 않은 생각을 무책임하게 피력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얘기를 이만 끝내고자 한다.

    정부의 현명한 사태해결을 촉구하며(내가 촉구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내 아이들에게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물려줄 수 있도록 하루하루 떳떳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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