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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2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감상문 (부제: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 글은 지난 10월 20일에 있었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를 보고 난 감상을 K리그 중심 축구 커뮤니티 사커월드에 올린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이 글은 사커월드에서도 볼 수 있고(
http://cafe.daum.net/soccerworldcafe/dp1f/95),
사커월드의 다음 편집 기사(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01023005438632&p=soccerworld)에서도 읽을 수 있다.

#1

비록 지난 시즌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전통의 명가요, 최근 십여 년간은 물론,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된 이래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 맞붙게 되었다.

1, 2차전을 홈 어웨이로 치르는 4강 경기. 7골이나 주고받은 난타전 끝에 1차전의 승리는 레알마드리드에 돌아갔다. 레알마드리드는 비록 경기에 이기긴 했지만 홈에서 3골이나 내준 게 못내 아쉬웠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서는 비기는 것만 못하긴 했지만 3골이나 넣었으니 나름 만족할 만 하다. 그것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에서!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언론은 매일 같이 이 희대의 빅매치에 관한 기사를 쏟아 낸다. 화끈한 성격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나라의 언론들은 어느 틈에 지나치게 과열되어 시시콜콜한 가십까지도 서로에 대한 공격성 기사로 만들어 내곤 한다. 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인터넷 기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벌어지는 감독간의 입씨름 - 예전 EPL에서 맞대결 할 때 마다 무수히 많은 기사거리를 쏟아내던 감독들 답게 이번에도 화끈하게 서전을 펼치고 있다. 선수들 간의 신경전도 대단하다. 마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숙적 리버풀에서 뛰던 선수가 올 여름에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칼을 겨누고 있다. 같은 리그에서 수차례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이미 상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1차전에서도 어찌나 열심히 뛰어대던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포럼에서는 그 선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들끓고 있을 정도다. 거기에 서로를 도발하는 선수들의 입씨름도 더해져 팬들의 투쟁심이 더욱 고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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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잔디는 아니지만.. 저 푸른 잔디는 언제 봐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지난 번 1차전 경기가 평일에 열리는 바람에 원정에 합류하지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하겠노라고 잔뜩 벼르고 있다. 전체 여석의 40%를 판매하는 온라인 예매는 개시 10분 만에 동나 버렸다. 온라인 예매가 40%인데도 현장 판매는 거의 구하기 힘들 예정이다. 어차피 남은 표들은 처음부터 시즌권 구매자들의 몫이었으므로.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암표를 구하느라 극성이다. 어지간한 호프집에서는 단관 예약을 받느라 아우성이다. 이제와 대형 스크린을 구매하는 가게들이 늘었다는 소문이다. 덕분에 뜬금없이 LCD 관련 테마주들이 일제히 급등할 정도.

2010년 10월 20일.
유럽 클럽 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이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2
비록 지난 시즌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전통의 명가요, 최근 십여 년간은 물론, K리그가 출범된 이래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인 성남 일화.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2006년 챔피언스리그의 우승팀이자 지난 시즌 K리그 우승팀인 전북현대를 꺾고 4강에 합류한 알샤밥이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 맞붙게 되었다.

1, 2차전을 홈 어웨이로 치르는 4강 경기. 7골이나 주고받은 난타전 끝에 1차전의 승리는 알 샤밥에게 돌아갔다. 알샤밥은 비록 경기에 이기긴 했지만 홈에서 3골이나 내준 게 못내 아쉬웠고, 성남 일화로서는 비기는 것만 못하긴 했지만 3골이나 넣었으니 나름 만족할 만 하다라고 말해야 맞을 어웨이 경기인데.. 어째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그렇지 않다. 시즌 중 중동 까지 날아가서 치른 경기라는 사실은 생각도 않고 K리그의 수준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얘기가 나온다. 왜 이기지 못했느냐, 중동의 침대축구를 어떻게 견디려고 하느냐, 탄천에서 2004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얘기는 차라리 고마울 정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랬다면 역시 강팀이라는 소릴 들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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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1시간 30분전 - 너무나 한산한 경기장. 오늘 경기를 알리는 안내문 조차 한장 없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 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경기 관련 뉴스를 찾는다. 혹시 흥미로운 기사를 놓치지는 않았을까, 새로 올라 온 기사는 없을까. ‘축구는 NEXT’라는 슬로건을 내건 포털의 뉴스기사를 뒤지기 시작한다. 스포츠 섹션을 눌러 국내 축구를 누르고, 다시 K리그를 누른다. 딱히 새로운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데라고 특별할 리가 없다. 다른 포털을 가 봐도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은 평소의 학습효과로 잘 알고 있다. 여기 없으면 없는 거다.

어차피 나는 마이너리티. 고매하신 기자님들이 이런 소수파들이나 좋아하는 경기 따위에 눈길을 줄 리가 없다. 그냥 평소 자주 가는 K리그 커뮤니티에 들러 혹시 뭔가 얘기 거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안티풋볼 논쟁으로 축구판을 들썩이게 했던 과르디올라와 무리뉴의 설전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흥밋거리가 되었는데.. 신태용 감독과 상대 감독이 치열하게 설전을 벌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알샤밥 감독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나 해서 “신태용 알샤밥 설전” 등의 검색어로 포털을 뒤져봤지만 고작 ‘꼭 이기고 말겠다’ 따위의 당연한 얘기가 설전이라며 기사 한 두 개 올라와 있을 뿐이다. 그럼 누구는 기자회견에서 ‘곱게 져드리겠습니다’ 한다는 건가? 저게 설전이면 헤이날도도 호날두다.

올 시즌 중반에 송종국이 알샤밥으로 이적했다. 2002년 월드컵의 영웅이자 바로 얼마 전까지 성남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鷄馬!!) 수원에서 뛰던 송종국(심지어 수원의 주장까지 역임했던 선수다). 올 여름에 알샤밥으로 이적한 송종국은 8강 전북전에서도 교체 출장하여 팀의 승리에 일조했고, 성남과의 4강 1차전에서는 선발 출장해 82분 동안 성남을 줄기차게 괴롭혔다.

하지만 그 뿐.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이런 내용을 조명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고 해야 맞겠다. 어쩌겠는가, 그대는 마이너리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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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넘게 찾은 끝에 딱 하나 발견한 이 날 경기 광고판 - 탄천운동장 버스에 붙어 있는게 내가 찾은 유일한 광고였다.>

어차피 중동까지 원정경기를 참관한다는 것은 무리다. 물론 개중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가장 먼 곳이라 봐야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 땅에서 매주 펼쳐지는 K리그 경기의 원정 참여자가 그렇게 적은 수 인 것을 생각해 보면, 중동으로 떠나는 원정은 중동 여행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탄천에서의 경기라면 다르다. 이 엄청난 빅매치를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 경기를 뛰고 있는 팀은, 이 경기장을 채운 선수들은 아시아 전체에서 4강안에 든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마드리드의 경기는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슴이 뛸 만 하다.

하지만 그 뿐. 그래봤자 세계축구의 변방인 아시아 클럽 간의 별 볼일 없는 경기일 뿐이다. 어차피 마이너리티의 스포츠 - 또 한번 그들만의 축제가 벌어지고 말 뿐이다.

2010년 10월 20일. 굳이 이렇게 적지 않아도 어차피 기억할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름을 불러야 꽃이 된다는 시구처럼 사물은 인지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한다.
아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리그. K리그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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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K리그와 그 팀들의 홍보 전략이 딱 이렇다. - 오지 마라.>



#3
축구가 관중 수와 인지도, 관심도와 애정만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게임이었다면 우리는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일 테지만, 다행히도 축구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2006년의 전북이 그랬고, 2009년의 포항이 그랬다. 우승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항상 다른 리그 팀들을 압도해 내던 이천수의 울산 역시 그랬다. 아무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도 그들은 늘 잘해냈다. 그리고 이 날의 성남 역시 그랬다.

어차피 알샤밥은 비기기만 해도 결승에 올라간다. 반면 성남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이런 조건은 언제나 아군에 불리하게 느껴진다. 성남이 알샤밥의 입장이었다면 “비기기만 해도” 라는 전제가 부담스럽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또 그래서 부담스럽다. 이 날도 그래서, 킥오프 직후 성남 선수들은 둔해 보였다. 비기기만 해도 결승행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는 알샤밥은 수비 지향적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사우디 팀이라고는 결코 믿어지지 않는 압박을 구사했다. 지난 8강 전북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알샤밥은 홈에서보다 원정에서 더 동기부여가 잘되는 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정에서의 그들은 참 단단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남의 공격이 매서워졌고, 몰리나가 막힌 틈을 타 라돈치치와 조동건이 활발한 공격을 펼쳐냈다. 전반 중반 이후, 계속 두드리던 골문이 드디어 열리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1, 2차전 합계 4-4. 원정골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성남이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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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고 기뻐하는 성남 선수들과 비통해 하는 알샤밥 선수들의 대조. 승부의 속성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라돈치치는 그간 봐왔던 것 중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투쟁심과 몸싸움, 볼컨트롤, 공중 장악력에 헌신적인 플레이. 그야말로 포스트 플레이어의 교과서적 모습이었다.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자신에게나, 소속팀에게나, 팬들에게나 모두 안타까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결승전에도 함께 라커룸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무척이나 운이 없긴 하지만, 분명 그는 즐길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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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경기에서 압도적인 피지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라돈치치.>

반면 몰리나의 몸은 다소 무거워 보였다. 시종일관 상대의 강한 압박과 집중적인 견제로 고전하는 모습이었는데, 프리킥이나 코너킥에서 보여 준 킥력만큼은 역시 좋았다. 후반 막판에 상대의 거친 태클로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이었는데,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성남의 에이스는 몰리나가 아닌가. 결승전에는 꼭 이름값을 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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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경기에서 평소의 10% 정도의 모습만 보여준 몰리나.>

긴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헤맨다던 조동건은 아직 폼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아 보였지만, 멋진 하프-발리 슈팅으로 자신을 믿어 준 감독에게 보답했다. 이 날 경기가 시작하기 전, 함께 경기장을 찾은 지인들에게 조동건과 전광진을 두고 이동국과 김상식을 버릴만큼의 카드였는가를 성토했었는데, 둘 다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덕분에 경기 내내 머쓱해져야 했다. 김철호의 활동량과 강한 압박은 경기를 성남이 주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카마초를 꽁꽁 묶어 버린 김성환의 보직변경은 몹시 성공적이었다. 조병국이나 사샤의 플레이야 늘 그렇듯 물샐틈 없었고, 홍철과 장석원의 플레이는 저들이 과연 리그 새내기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정성룡 - 후반에 펼친 정성룡의 선방쇼는 왜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No.1 골키퍼인지 여실히 증명해냈다. 후반 교체된 송호영은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은 뭔가 좋지 않았다.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경험의 한 페이지. 오늘의 경험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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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주역들. 하나 같이 탐나는 선수들이었다. 신태용 감독, 정말 무서운 팀을 만들어 냈다.>

알샤밥의 선수들은 온통 모르는 선수들 일색이지만, 이미 전북전부터 4번이나 경기를 보다 보니 얼굴과 이름 정도는 익숙해져 버렸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는 카마초.
비록 팀을 패배로부터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이 날 경기에서도 그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 유연한 몸놀림과 정확한 킥력, 넓은 시야는 당장 K리그로 이적해 와도 충분히 정상급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탐나는 선수였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수원에서 뛰던 송종국. 파란 유니폼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던 선수였다. 여름 휴식기 동안 갑자기 터져 나온 이적설, 그리고 느닷없는 사우디로의 이적. 그리고 어이없게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송종국.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전북전에서 슬슬 몸을 풀었던 송종국은 성남과의 4강전에서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는데 이날 경기에서 송종국의 플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래선 안 돼!’ 하는 우스갯소리를 경기 내내 해야 했을 정도로.
그리고 침대축구의 히어로 따바레즈. 전북과의 경기에서 저 따바레즈 때문에 혈압 올랐던 걸 생각하면.. 정말 보기보다 몸이 약한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날 경기에서는 팀이 지고 있다 보니 침대축구는커녕 넘어져도 벌떡 벌떡 잘만 일어나는 그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매너 좋게 성남 선수들과 악수하며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긴, 승리를 위한 그 마음에 침대축구 아닌 뭔들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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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카마초, 조율의 송종국, 침대축구의 달인 타바레즈>

1-0 이라는 스코어는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날 경기는 몹시 박진감 넘쳤고, 함께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만 했다. 이 정도의 경기를 보여 줄 수 있는 팀이 15개(?)나 있는 리그. 그 리그를 사랑하는 - 나, 이런 사람이다. K리그 팬이어서 참 다행이다, K리그를 좋아하길 정말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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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싸웠다!>


#4
나는 성남의 팬이 아니다.
오히려 성남은 내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리그 내 독보적인 존재였던(특히 차경복 감독 시절) 때의 성남은 보통 이상의 긍정적 의미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팀 최고의 레전드인 신태용을 내쳤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내가 지지하는 팀도 아니었고, 내게 그다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수도 아니었지만, 신태용의 은퇴에 대해 한동안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그 후로 성남은 보통 이하의 그저 그런 팀 정도로 밖에 인식이 안 됐다. 거기에 2006년 챔피언결정전의 상대였던 성남에 빼앗긴 리그 우승컵 덕분에 성남은 부정적인 이미지 가득한.. 마치 게임에서 끝판왕 같은 느낌으로 남고 말았다.
최악이었던 것은 지난 시즌 신태용 감독이 취임하자마자, 자신 바로 다음 쯤일 팀의 레전드 김상식을 내친 것. 그로 인해 반감은 더욱 심해졌다. 물론 신태용 감독의 의중이 어떤 것일지는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으로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차피 축구를 보는 데는, 그리고 무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작용하기 마련.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팬심으로 - 오자마자 이동국을 내쳤다는 사실이 대략 2730배 쯤 반감을 키웠다는 데 부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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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승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건 '동질감'일 것이다.>

지난 시즌 전북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성남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고 이동국이 득점왕을 했을 때는 성남과 신태용을 향해 혼자 히죽였다. 김상식이 자신이 있고 없음이 1위와 2위의 차이라고 말한 인터뷰가 너무나 속 시원해 한참을 즐거워했다. 정작 내가 지지하던 팀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2자리 수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무너져 내렸는데도, 지난 겨울이 마냥 즐거울 정도로 괜히 좋았다. 성남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신태용 감독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렇듯 나는 성남에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사실 딱히 반감을 드러낼 일이 없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평균 이하의 호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했다. 내 팀도 아닌데, 괜히 맘이 쓰였다. 그다지 좋아하는 선수도 없는데 괜히 선수들에게 미안해졌다. 이제 곧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인데.. 이미 포기한 언론은 둘째 치고 K리그 커뮤니티조차 썰렁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 성남 일화가 이 정도로 비인기 팀이었구나. 성적은 늘 앞에서 놀고, 평균 관중 순서는 늘 뒤에서 논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피부로 느껴졌다. 함께 관중 동원에 열과 성을 다할 것도 아니면서 웬 오버고 웬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같은 마이너리티의 동지로서, 같은 리그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런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렷다. 다소 숫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나 성남이나 K리그 다른 어떤 팀을 보나.. 결국 이게 외부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한 수준일 테니 말이다.

결국은 모두 마이너리티로서의 설움이자 동질감.



#5

자고로 맛집은 입소문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법이다.

회사가 있는 구로 디지털단지 근처에 재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허름한 낙지집이 하나 있다. 소문난 맛집들이 으레 그렇듯 몹시 지저분하고 낡아 빠진 그 식당은 처음 갔을 때는 불쾌함마저 느낄 정도다. 처음 가 본 사람들이라면 신발을 어떻게 벗어야 할지도 모르게 입구는 좁고, 간신히 가게 문지방을 넘어서서도 도무지 어떻게 엉덩이를 내려야 좋을지 몰라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된다. 주 메뉴는 떨렁 하나 - 주문을 받는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머리수를 세고 가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다들 뭐 이런 데를 다 왔느냐고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 무쳐낸 빨간 낙지를 한번 맛보고 나면 그런 불평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역시 맛집의 최우선 조건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음식 맛이다.

그런 점에서 K리그는 분명 맛집이 될 자격이 있다.
다만, 아직 맛집으로 소문이 나지 못했을 뿐이다. 주방장들이 요리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온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선뜻 허름한 식당 문을 들어설 용기가 나진 않는다. 누군가 그 맛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한번 맛보라고. 마치 그 낙지집을 누가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결코 가지 않았을 것처럼. K리그에의 관심 역시 누가 누군가에게 - 그렇게 주의를 환기해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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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집계된 관중은 1만을 살짝 넘겼다고 한다. 경기장 분위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자국리그의 발전이 있어야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을 담보할 수 있다는 등의 계몽적인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이런 즐거움을 함께 해보자고 손 내밀어야 하는 건 아닐까? 비록 주급을 몇 억씩 받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뛰지는 않지만, 나름 재미있고 수준 있는 리그라고. 입단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한 박지성은 논외로 하고(물론 이건 웃자고 하는 얘기), EPL에서 가장 저평가 됐다고 하는 이청용이 도움왕 한번 못 해본 리그라고. 지구 반대편, 그래봐야 짝사랑일 뿐인 남의 나라 경기가 아니라, 여기 내가 나고 내가 자란 이 동네에 나와 함께 숨 쉬는 선수들이 있는 팀의 경기라고. 언제나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내 팀이 있다고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게 어쩌면.. 조금 먼저 알게 된 사람들의 의무 같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 반면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지독하리만큼 외로운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현실이다, 괴짜 취급 받는 것도 이제는 싫어 일부러 축구 얘기 하지도 않고, 더 이상 K리그 봐 달라는 따위의 구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하는.. 그런 현실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의 숙명일 것이다.

어린 시절, 흉측한 생김에 어쩐지 이상한 냄새도 나는 - 그저 보기만 해도 질려하던 순대를 처음 먹어 보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당시 순대를 먹으면서 했던 생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뭐야, 이렇게 좋은 맛을 왜 몰랐던 거지?’

조금 더 머리가 굵어져 약간은 현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쯤, 나는 그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진귀한 경험들을 다 해보지도 못하고, 정작 그런 즐거움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무언가에 대한 나의 호오는 그저 무지에 따른 결과는 아닐까?’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리는 게 많고 호오가 분명한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분명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 반대로, K리그의 즐거움을 - 1년 중 8개월, 매주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지는 그 축제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다행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니 그걸 몰라준다고 속상해 할 필요도 없고, 그 재미를 알아 달라고 떼쓸 필요도 없다. 결국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때 돼서 왜 이렇게 맛있는 순대를 이제야 먹게 되었는가에 대해 후회해도 소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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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와 팀을 홍보하는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연맹과 구단에게 있다.>


#6
2010년 11월 13일 도쿄에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챔피언스리그로 확대 출범한 이후로만 따져도 성남에게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이 낯선 무대는 아니다. 홈 어웨이로 치러졌던 지난 2004년과는 달리 도쿄에서 단판으로 치러진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더구나 도쿄라면 우리에겐 홈이나 다를 바 없다. 시차에 고생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중동팀과는 달리 기후가 달라 고생할 이유도 없다. 밥상은 차려져 있다.
이제까지 그랬듯, 성남은 그 밥상 안 차내고 잘 먹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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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치치를 위해서라도, 그대들은 우승컵을 거머쥐어야만 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리 악에 받쳐 있을 것도 아니다.

2006년에 우승한 전북의 관중이 만원을 기록했다는 얘기 같은 건 들어 본 적 없다. 2009년의 포항은 평균 관중이 적지 않은 편이었고 간간히 매진을 이루기도 했다지만, 주중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그랬다는 얘기 역시 들어 본 적 없다. 비록 성남의 평균 관중이 전북과 포항보다 더 적긴 하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올해도 그런 경기가 하나 더 있었을 뿐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해도 우리네 K리그 팀들은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별을 달아 나갈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우승을 기록한 적이 있긴 하지만 올 시즌 역시 K리그에 한 수 아래임을 여실히 드러낸 J리그나 아직 턱없는 실력의 차이가 있는 C리그는 물론, 동남아나 멀리 중동팀들에 이르기까지. K리그는 아시아 최고 리그임을 자부한다. 그리고 이런 K리그의 위상이 언제까지고 굳건할 것을 나는 믿고 있다. 물론 꼭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마이너리티의 소박한 소망 -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그냥 이렇게 늘 가까이 숨 쉬고 있어 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가 도쿄에서 열리는 탓에 K리그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이자,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우승팀을 배출하게 되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이번 결승전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렇지만 TV로나마 성남이 모든 K리그 팀을 대표해 우승컵을 들어 올려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응원할 것이다. 덧붙여 이번 주말 FA컵을 거머쥐고 내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 성남으로부터 우승컵을 받아 오는 수원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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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CHAMPION K-LEAGUE : 이렇게 좋은 콘텐츠로도 흥행을 못 내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재주다.>

Posted by K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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