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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가, 산책.
    쉼을 위한 이야기/사진 2011. 5. 24. 22:35

    마지막 수업이 또 제멋대로 휴강이다.
    휴강인줄도 모르고 강의실에서 한참 기다리다, 결국 휴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진작 알았으면, 훨씬 일찍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짜증스러웠다.

    병점역에 내려 버스를 타려다가..
    문득 바람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이미 져서 어둑어둑하지만, 밤이 내린 거리를 걷는 것도 충분히 기분 좋겠다 싶었다.
    바람이 너무 좋으므로..

    문득 생각하니 5월도 막바지다.
    초여름이구나.
    이제 곧 숨쉬기도 힘들만큼 더워질테다.
    아마 지금이 가장 좋은 날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다 애틋하다.


    사실 a900의 고감도는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렇게 어두울 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자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떠랴. 비록 노이즈가 지글지글해 똑딱이나 다름 없을 사진이지만.. 그래도 셔터를 누른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날이다.



    병점고가 옆길을 지나고 있다. 저가형 렌즈 답게 플레어가 작렬한다. 저분산렌즈를 썼다고 알고 있는데 플레어가 엄청나다. 대체 뭘 쓴거냐 ㅋ



    집앞으로 큰 도로가 새로 난다. 원래 작년에 개통 예정이었다는데 아직 공사가 한창이다. 이게 개통되고 나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교통이 좋아질거다.



    길가에 토끼풀이 잔뜩 자라고 있었다. 어렸을 땐 저걸 갖고 반지며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반지와 팔찌만 간신히 만들었지 목걸이는 엄두도 못 냈다. 만들어 줄 사람도 없었고..
    그냥 영화 같은데서 토끼풀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 주고 하는 걸 보면서 우와, 했을 뿐이다. 



    일부러 셔터스피드를 낮춰 찍어 봤다. 원하던 그림이 되긴 했는데.. 구도가 아쉽다. 좀 더 광각으로, 화면을 좀 더 올렸어야 했다.
    보정을 좀 가미해서 고흐의 그림처럼 만들어 볼까 했지만 귀찮으므로 pass.



    황구지천을 건너는 다리의 난간에 꽃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예전부터 느끼던건데, 참 대단하다.
    저걸 저렇게 심어서 다리 난간에 놓을 생각을 한 것도, 저렇게 잘 자라게 해 놓은 노력도. 하지만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하루 종일 손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가까이 당겨 찍어 볼까, 하고 별 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다. 이미 몹시 어두운 시간이라 구도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불빛을 내뿜을 때에 맞춰 찰칵.



    찍고나니 빛망울이 너무 예쁘길래 몇장 더 찍어 봤다. 원형 조리개라 빛망울이 참 예쁘다. 하지만 빛망울에도 보이는 플레어. 하하..



    아련하게 보이는 빛망울들에 취해있느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한참을 서 있었다. 눈으로 보는 빛들은 이렇게 사진이 되어 남아 있지만,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까지 다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빛망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살던 성거 - 그 동네 기억이 났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딱 저런 풍경이 떠오른다.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입김은 차고, 멀리 인가에 빛이 보인다.
    어쩌면 그저.. 눈이 무척 안 좋았은데도 안경을 안 쓰고 다닐 때라 세상이 온통 저런 빛망울로 보이던 시기이기 때문일까?

    여튼, 그 시절 기억이 났다.
    그립다.

    참 이상하지.
    그리 대단할 것도, 그리 즐거울 것도 없는 삶이다 싶은데도 지나간 날이란 언제나 그렇게 그리운 감정으로 기억된다.


    빛망울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몇장 더 찍어 봤다. 일부러 MF를 조작해 빛망울을 만든다.
    아래 사진은 프레임을 좀 잘라 화각을 조정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귀찮아 그냥 리사이즈 gogo. - 스냅은 생각없이. ㅎㅎ



    집 앞에 다 와서.. 나른한 늘어짐을 찍고 싶었다. 일부러 핀이 나가게 했는데, 광각이라 더 이상 핀이 나가질 않는다.



    2km 정도의 길.
    그냥 걸으면 30분도 안 걸릴 일이지만,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다보니 한시간이 꼬박 걸렸다.

    바람이 참 시원하고 공기도 맑다. 마침 비행기도 안 지나가서 더욱 좋았다.


    예전에 부평 살 때는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면 2~30분 걸렸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었다.
    이런 저런 생각하며 걸으며 잘못한 일 반성도 하고.. 고마운 일 되새김도 하고.

    나이 먹으면서 점점 생각하는 일에 서툴고 소홀해진다.


    이제부터라도 조금 늦춰진 템포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노곤노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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