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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칠 때 떠나라
    쉼을 위한 이야기/영화 2005. 12. 9.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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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밤, 문득 영화가 보고 싶었어.
    어떤 영화를 보고 싶었다, 또는 누구와 보고 싶었다가 아니라..
    그냥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영화에 몰입해 있는 딱 그 순간이 그리웠어.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어쩐지 영화를 본 지 무척 오래된 느낌이었어.
    늦은 밤만 아니었다면 영화를 보고 잤을텐데..
    그 시간에 영화를 봤다가는 오늘 하루를 망쳐 버릴테니 꾹꾹 참고 있었지.

    그리고 오늘, 저녁에 한가한 틈을 타 예전에 다운 받아 놓고 안 봤던 영화를 봤어.
    영화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라".
    예전에 친구들이 영화 괜찮으니 영화관 가서 봐도 아깝지 않을거라 했던 영화지.
    워낙 극장에 가지 않는 편이어서.. 역시 못 보고 말았었는데.
    다운 받아 놓은지 한달도 훨씬 넘은 오늘, 드디어 그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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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영화가 시작될 무렵엔.. 조금 졸려오기까지 했어.
    원래 스릴러에 썩 흥미가 있는 편도 아닌데다.. 
    이 영화는 사실 "진실"이라는 것을 향해 가는 고리, 즉 스릴러의 진수를 느끼기에는 한참 모자르다고 생각됐거든.
    간간히 등장하는.. 조금 핀트가 안 맞는 것 같은 코믹 신도 그다지 재밌지 않았고.
    그런데 극이 후반으로 갈 수록, 특히 범인 검거를 마친 후 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얼핏..
    이 영화에 나름대로 반전이 있다던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얘기 들었던 걸 까먹은 후라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어.
    (사전정보가 없는 영화보기는 이래서 즐겁다)

    결국 영화를 다 본 후, 스토리를 꿰어 보자면..
    정유정은 회사 사장과 내연의 관계였고, 둘의 밀월여행에서 불의의 사고로 회사 사장이 죽게 된다.
    이 사고로 정유정의 불륜이 폭로되고 정유정은 미국지사로 옮기게 된다.
    정유정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결심하고 호텔을 찾는데,
    오래전부터 정유정을 흠모하던 호텔 지배인이 음심을 품고 수면제를 먹인다.
    하지만 수면제와 함께 독극물을 마신 정유정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다.
    정유정과 내연관계에 있던 죽은 사장의 딸은 그의 남자친구와 함께 호텔을 찾아, 정유정을 칼로 난자한다.
    한편 정유정의 친동생은 오래전부터 누이를 흠모하고 있었는데, 
    최근 누이의 행실에 부끄러움을 느껴 누이와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한다.
    사건이 있던 날 밤, 휘발유를 들고 누이의 객실을 찾게 되나 이미 정유정은 죽어 있었고, 
    혼비백산한 정유정의 동생은 현장에서 도망치다 주차장에서 현장범으로 검거된다.

    자.. 하루밤, 몇 시간 동안의 일들일 뿐인데 적어 놓고 보니 참 길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내가 이해한 사건의 정황인데..
    뭐 딱히 이해랄 것도 없이, 그야말로 영화 내용 그대로지.
    (뭐, 메인 스토리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넘어 가기로 하자. 이를테면 정유정의 동생이 누나와 어떤 관계였는가라던가, 정유정의 유산은 어떻게 되는가 등.. )
    누가 누굴 죽였고, 어떻게 죽였고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관심이 없었어.
    그냥, 스토리가 너무 평이하고 구멍이나 함정 같은게 딱히 없던 영화라..
    영화가 말하는대로 얘기가 흘러가는 대로 그냥 이해만 하면 되는 거였거든.
    누가 죽였을까? 하는 추리 따위 절대 필요 없을 정도로 말야.
    간간히 정보를 흘려주고 나중에 터뜨려 줄 의도였던 것 같은데, 그러기엔 좀 허술했지 아마..


    다만, 영화 끝날 즈음..
    신구가 
    "
    그 여자, 정말로 사랑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
     
    하는 부분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됐어.

    나는 자살이라는 것도, 불륜이라는 것도..
    딱히 관심 없는데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편인데..
    오늘에서야 그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그랬다면 어떨까..
    만약 나였다면 어떨까..

    최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나는 나를 옥죄던 몇가지 굴레들을 조금은 벗어 던진 것 같아.

    아직 조금일 뿐이지만..아주 조금이마나.. 
    사고의 확장이랄까? 아니면 조금 느슨해졌다랄까? 
    아무튼 그런 걸 느낄 수 있어.
    그게 좋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다만, 어떤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일이 조금은 신중해 졌다는 건 사실일거야.

    그 전 같았으면 이런 생각은 좋지 않다고, 머리에 떠올리는 것조차 나쁘다고 하며 절대 떠올리지 않으려 애를 썼을텐데..
    이제는 조금 솔직해 지는 걸까?

    사실 그동안도, 내 머리가 시키는 대로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완벽하게 움직인 건 아니었는데..
    그걸 떠올리거나 거기에 대해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난 나쁘다, 이건 내가 할 짓이 아니다. 하면서 자학하고 있던 것 같기도 해.
    더구나..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 또는 했던 일 -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 - 에 대해서 
    "살다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또는 "이번엔 내가 실수했구나, 다음번엔 잘 해야지."가 아니라 
    "난 그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나는 나쁘다." 하고 무조건적으로 막아 버려서 
    나를 자꾸만 다치게 하고 병들게 하곤 했던지도 몰라.

    어느 편에서 보면 위선(그런다고 내가 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일 수도 있고, 어느 편에서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렇게 믿고 싶지만 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건 아니니..) 일텐데..
    문제는 그게 좀 과해지다 보면, 어떤 상황이나 그 상황에 놓인 각 개인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데 있는 것이지.
    실제로 손가락질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런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나를 쉴 새 없이 괴롭히곤 했던게 사실이야.


    나이가 들면서, 또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평소의 가치관이나 평소에 다짐하던 것들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경우가 종종 있어.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여러번 겪어봤으면, 이젠 좀 철이 들을 때도 됐는데..
    나는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 다 그래도 나는 아닐거라고 고고한 척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영화 얘기 하다가 참 길게 빠진다.
    "불륜" (또는 "로맨스" )을 두고 하는 얘기야.
    분명 나는, 저건 아니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의 마음까지 부정하려 들지는 말아야겠다는 걸..

    어렸을 적, 내 착한 작은 누이. 나를 다독이며 하던 말 떠올라.
    "
    좀 더 나이가 들면, 너도 이해할 수 있을거야. 
    누나도 어렸을 땐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
    "
    누나가 그 얘길 해 줬을 때,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나는 죽어도 이해 못 하고, 그런 건 하라고 애원해도 안 한다고.
    그렇게 다짐해 보였지만, 그리고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누나.. 난 이제서야 조금, 나이가 들어 가나봐.


    영화 속 신구 대사 처럼.. 
    "정말 사랑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사랑이라는게, 그렇게 맘처럼 되는게 아니란 걸 나도 이미 알 만큼 알게 됐으니까..


    난 절대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거라 믿었어.(사랑도 사람도 두번씩 반복된다.)
    만약 내가 내 사랑을 관철시키려 하면 다른 누군가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말야.
    물론, 실제로 짝이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러다 최근에서야 난 깨달았어.
    왜, 어때서 좋아지는게 아니라.. 그냥 좋아지는 거란걸.
    이미 좋아진 다음엔.. 그 다음부터는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닌 거란걸 알았어.
    그리고.. 이젠 그런 감정들에 더 이상 다치는 사람 없도록.. 다치는 일이 없도록 
    조용히 마무리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이제 정말.. 조금은 알겠어.
    신구가 가슴 아픈 표정으로 말한 그 의미를 말야.
    "그 여자, 정말로 사랑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젠 확실히 알 것 같아,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러니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필요도, 이유도, 자격도 내겐 없다는 걸.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까지도.
    그저, 그러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다짐만 되뇌일 뿐.


    겪어 보지 않은 일을 두고, 그리고 알 수 없는 내일의 일을 두고..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일을 두고, 그네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야.
    또 섣불리 장담해서도 안 되는 거고.
    하긴.. 박수칠 때 떠나려면, 정말 잘 해야 할 거야. 쉽지 않겠지.

    "박수칠 때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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